"일상의 언어로는 포착되지 않는, 삶의 미세한 결을 그리고 싶어요"

입력
2020.11.2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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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자 백수린 소설가 인터뷰


이견 없는, 심사위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 ‘만장일치’의 결과였다. 제53회 한국일보문학상 최종 수상작으로 결정된 백수린(38) 작가의 ‘여름의 빌라’(문학동네)는 예심 단계부터 심사위원 모두가 한 표씩 던진 후보작이었다. 쟁쟁한 경쟁작들 사이에서도 이토록 압도적인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었던 데는 이 작품집이 갖춘 ‘고른 안정감’이 이유가 됐다. 2011년 등단 후 10년, 자신만의 완만한 능선을 만들어낸 작가가 이룬 결실이다.

23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한국일보사에서 만난 백 작가는 “(수상은) 전혀 예상도 못했다”고 손을 내저으면서도 “매번 지금보다 더 잘 쓸 수 있을까 걱정하는 스타일이라서, 이 책으로 상을 받으면 참 좋을 것 같기는 했다”며 웃었다.

‘여름의 빌라’는 ‘폴링 인 폴’(2014), ‘참담한 빛’(2018)에 이은 작가의 세 번째 소설집이다. 특히 지난해 출간된 중편소설 ‘친애하고, 친애하는’을 비롯해 지난 1년 사이에만 짧은소설 한 권, 번역서 두 권, 에세이 한 권을 냈다. 여러 작가가 하나의 책을 묶는 선집에만도 세 번이나 참여했다. 데뷔 초창기의 작업 속도와 비교하면 마치 참았던 숨을 한번에 몰아 쉬기라도 하듯 바쁜 행보다. 실은, 최근에서야 ‘학생’과 ‘소설가’ 사이 이중생활을 끝낸 덕이다.

“이 소설집을 내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박사과정을 병행하는 학생이었어요. (백 작가는 연세대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서강대 대학원과 프랑스 리옹2 대학에서 불문과 박사학위를 받았다.) 항상 소설에 온전히 마음 쓰고 있지 못하다는 미안함이 있었죠. 이번에야말로 처음으로 ‘빚진 게 없는’ 느낌으로 쓴 것 같아요.”

‘빚진 게 없는 마음’으로 쓴 덕일까, 앞선 작품집 속 ‘백수린식 인물들’의 특징이 대개 신중하고, 조심하고, 몸을 사리는 것이었다면 이번에는 비교적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다. 한 심사위원은 “백수린 작가 소설 속 주인공들의 소극적 면모가 늘 조금씩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늘 머물던 집을 벗어나 밖을 향해 나간다”며 “작가 자신의 내면에서도 어떤 성장이 있었던 것 같다”고 추측했다.

이 같은 변화에 대해 백 작가 역시 “작품 활동을 하면 할수록 소설 속 인물들, 특히 여성인물들을 재현하는 데 있어 고민이 늘어간다”며 “내 작품의 스타일상 여성 전사(戰士)를 그릴 순 없겠지만, 처해진 조건에서라도 조금씩 용기를 내보는 인물을 만들고 싶어진다”고 설명했다.

“저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에게는 두 가지 면모가 있는 것 같아요. 소심하고 안정지향적인 자아와 도전적이고 자유로운 자아. 늘 이 두 자아를 오가며 주인공을 만들어 왔어요. 현실에서는 대개 여러 이유로 첫 번째 자아가 이기지만, 소설에서만큼은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한 발짝 더 나가는 인물을 그리고 싶었어요. 그리고 저 역시 점점 더 그 쪽을 향해 걸음을 옮기게 되고요.”


사실 심사 과정에서는 대부분의 소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유려함’이나 ‘안정감’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수채화처럼 아름답지만, 지나치게 ‘안전’하다는 데 대한 걱정이었다. ‘교양 있는 중산층의 양심 고백’ 같다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그러나 백 작가는 “그건 바꿔 말하면 한국 문학이 지금껏 오랫동안 특정 계층의 이야기만 다뤄왔다는 얘기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제가 관심 있는 것은 굉장히 평범해 보이는 일상이나, 극적이지 않은 순간에 생기는 작은 기척이에요. 이 기척은 무척 조용하고 미세한 균열이라서, 되려 다른 극적인 요소가 있을 경우 놓치기 쉬워요. 외부 조건이 순탄하고 평범할수록 이전까지는 포착되지 못했던 지점이 발견된다고 생각해요.”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떠들썩한 축하를 받는 시상식을 못 하게 됐다. 그러나 백 작가는 “오히려 사람들에게 초대받는 부담을 드리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섬세하고, 사려 깊게, 타인의 주저함과 머뭇거림을 먼저 살피는 작가의 면모는 소설과 똑같다.

“이런 방식으로 쓰는 게 과연 유의미할까라는 질문이 늘 제 안에 있어요. 한국일보문학상은 그렇게 주저하거나 망설이는 와중에도 계속 써도 좋다는 선배와 동료들의 응원의 말처럼 들려요. 제 식대로 잘 말하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투박한 일상의 언어로는 포착되지 않는, 일분 일초마다 수없이 바뀌는 빛과 어둠의 결을 언어로 그려낼 수 있는 그런 작가요.”

한소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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