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뒷부리도요의 위대한 비행

입력
2020.11.24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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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철새들의 가을 이동이 끝나갈 무렵, 우중충한 코로나19를 뚫고 멋진 소식 몇 가지가 들려 왔습니다. 4BBRW라는 인식표를 가진 수컷 큰뒷부리도요(다리의 유색가락지가 파랑색 둘, 빨간색과 흰색이어서 붙은 이름)가 만들어낸 기록입니다. 4BBRW는 이번에 알래스카에서 뉴질랜드까지 무려 1만2,050㎞를 논스톱으로 비행한 기록을 만들었습니다.

우리나라를 정기적으로 찾는 새들은 흔히 여름철새, 나그네새 그리고 겨울철새라고 하는데 이 땅을 거쳐 다른 나라로 가는 도요물떼새는 나그네새에 속하지요. 큰뒷부리도요는 부리가 위로 휘어져 있어 붙은 이름입니다. 이 종이 매년 기록하는 비행경로는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지요. 물가에서 살아가는 도요물떼새이긴 하지만 거의 대부분은 수영을 하지 못하므로 바다에 내려앉으면 죽음과 직결되는 새가 어찌 대양을 한 번도 쉬지 않고 건너갈 수 있을까요?



그 비밀은 신체 변화와 관련 있습니다. 이 도요새들은 매년 2, 3월 뉴질랜드와 호주에서는 이동을 위해 집중적으로 먹이를 먹으며 몇 주 만에 체중을 두 배 가까이 불리지요. 이때 비행 중 에너지와 수분으로 사용할 지방을 온몸에 축적합니다. 뉴질랜드 큰뒷부리도요 26마리의 평균체중은 446g이었는데 이중 191g이 지방이었다죠. 60㎏ 성인으로 보자면 26㎏이 지방인 셈입니다. 심장, 신장, 소화 장기와 심지어 다리근육까지도 줄이며 지방을 축적하죠. 대신 비행 근육은 키우고 더 많은 산소를 흡수하기 위해 혈액은 더욱 농축됩니다. 그런 후 기상 조건이 적당하고 충분히 지방을 축적했다면 출발할 수 있지요. 먹이도 물도 없이, 밤낮없이 약 8일, 190시간 동안 망망대해를 건너, 점점 좁아지고 있는 서해 갯벌로 날아옵니다. 몸을 다시 불리고 번식지로 이동하여 짧은 북극의 여름동안 새끼를 키워냅니다. 그리고 가을이 다가오면 남으로 이동을 하죠. 이때는 뒤에서 불어주는 순풍을 타고 태평양을 바로 건너가는 모험을 하게 됩니다.



지난 3월 28일 뉴질랜드를 떠난 4BBRW도 9,450㎞를 쉬지 않고 날아 7일 만에 전남 순천 인근에 도착했고 이어 4월 12일 금강하구로 와서 한 달 남짓 몸을 회복했죠. 이후 5월 21일 출발하여 6,250㎞를 5일간 비행한 끝에 알래스카 번식지에 도착했습니다. 알래스카 베링해협 인근에서 짝을 찾아 새끼를 기르고, 몸을 갖춘 9월 18일 출발한 후 태평양을 그대로 건너 뉴질랜드까지 224시간 동안 1만2,200㎞를 비행해냈습니다. 뉴질랜드로부터 우리나라 서해와 알래스카를 거쳐 다시 뉴질랜드까지 총 2만8,625㎞를 비행해 낸 것입니다. 도요물떼새가 이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것은 번식에 대한 숙명이고, 이를 위해 반드시 북쪽 항로에서 거쳐야 했던 곳이 바로 만경강과 동진강이 만나는 지금의 새만금이었습니다.

바다와 막힌 새만금의 내부 수질문제부터 이제 해수 유통에 대한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자연이 인간만의 것이 아님은 알고 있다면, 적어도 이렇게 위대한 생명체들이 영속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주는 현명한 종이길 바랍니다.



이동을 시작한 검은목논병아리의 CT 영상. 근육과 장기는 붉은 색으로, 지방은 노란색으로 나타난다. 체중은 469g이었다.(https://www.youtube.com/watch?v=TRHYj7ablvc&feature=emb_logo)



이동을 끝낸 검은목논병아리의 CT 영상. 이 개체의 체중은 238g이었다. 몸 전체에서 거의 소실된 지방을 볼 수 있다.(https://www.youtube.com/watch?v=lpXj8SHC2Gs&feature=emb_logo)


김영준 국립생태원 동물관리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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