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정권 인수 절차가 본격화하면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호의적 태도를 견지했던 유럽 내 우파 포퓰리즘 정부 지도자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세계 최강국 미국 대통령과의 우정을 과시하며 자국에서 권위를 세우는데 '트럼프 효과'를 이용했던 이들의 권력이 쇠퇴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3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의 우방이었던 동유럽 포퓰리스트들이 변화에 대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WSJ는 "트럼프 대통령이 기후변화·무역·안보를 놓고 독일·프랑스 등과 갈등을 빚으면서 동유럽 지도자들과 유대를 돈독히 해 온 것과 달리 바이든 당선인은 헝가리와 폴란드, 다른 중부유럽 국가들에 비판적"이라고 덧붙였다. 따라서 사법권 독립 침해, 언론 탄압 등을 감행해 온 이들 지도자들이 유럽 기관의 압력에 저항하기 위해 써 온 '트럼프 카드'를 더이상 구사할 수 없게 됐다는 얘기다.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가 한때 "트럼프 이전의 트럼프"라고 불렀던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와 지난 7월 재선에 성공한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이 대표적인 예다. 사법 장악으로 10년 넘게 장기 집권해 온 오르반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백악관 입성을 계기로 민족주의와 포퓰리즘을 '글로벌 트렌드'로 받아들이며 고무됐다. 두다 대통령은 지난 6월 대선을 앞두고 '선거용'이란 비난 속에 백악관을 찾아 트럼프로부터 미군 증강 계획을 약속 받았다. 폴란드는 러시아와 마주하는 지정학적 위협을 상쇄하기 위해 미군 주둔이 절실한 상황이다.
특히 최근 헝가리와 폴란드는 유럽연합(EU)의 장기 예산안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경제회복기금에 대한 거부권 행사로 EU를 분열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유럽판은 "이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 없이는 앞으로 EU당국에 덜 대립적이고 실리주의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부인 멜라니아 여사의 출신국인 슬로베니아의 야네스 얀사 총리도 EU 정상 중 몇 안 되는 트럼프 지지자다. 그는 지난달 트위터를 통해 바이든 당시 민주당 후보에게 "역사상 가장 약한 미국 대통령 중 한 명이 될 것"이라고 비판하는가 하면 지난 5일 대선 결과가 최종적으로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재선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이에 대해 슬로베니아 국방장관을 지낸 클레멘 그로셀지 유럽의회 의원은 "내년 7월 EU 의장국을 맡게 되면 트럼프 대통령의 확실한 지지를 얻을 것이라던 얀사 총리의 기대는 계산착오였다"며 "얀사 총리의 바이든 당선인 비판 발언은 향후 미국과의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꼬집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실패로 "유럽 포퓰리스트들은 강력한 영감과 정치적 산소를 빼앗겼다"고 폴리티코 유럽판은 평가했다. 하지만 그것이 '포퓰리스트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매체는 강조했다. "우파 포퓰리즘 지도자의 근간인 반이민 정책이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 가려졌지만 팬데믹으로 촉발된 경제적 고통이 이들에게 또 다른 가능성을 열어 준다"는 이유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