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선 3주 만에 입장을 바꿨다. 줄곧 선거 패배를 부정하던 태도에서 돌연 선회해 23일(현지시간) 연방총무청(GSA)에 조 바이든 당선인 측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협력할 것을 지시했다. 하지만 소송은 계속하겠다고 공언해 그의 입장 변화가 패배 ‘승복’인지, 단순한 전략적 ‘일보 후퇴’인지 의견이 분분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표면적으로 ‘국익’을 협조 지시의 이유로 들었다. 그는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우리나라의 최선의 이익을 위해” GSA와 에밀리 머피 청장에게 정권인수를 도우라고 명령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급격한 확산과 대선 피로도에 지친 미국사회에 더 이상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의도로 해석됐다.
연전연패하고 있는 불복 소송전도 심경 변화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 측은 6개 주요 경합주(州)에서 30건이 넘는 소송을 제기했으나 줄줄이 기각되거나 철회된 상태다. 이날만 해도 펜실베이니아주 대법원은 “겉봉투에 이름 등을 채우지 않은 우편투표 용지는 결격 사유에 해당한다”며 이를 집계하지 말아 달라는 트럼프 측 소송을 기각했다. 법원은 “선거 규칙을 기술적으로 위반했지만 선거권까지 박탈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고 판시했다. 미시간주 개표참관인위원회 역시 이날 개표 인증 투표 결과, 위원 4명 중 3명이 찬성해 바이든 당선인의 승리를 확정했다. “심지어 공화당 소속 위원도 찬성표를 던졌다”고 CNN방송은 전했다.
우군인 공화당 인사들마저 속속 등을 돌리는 것도 그를 옥죄고 있다. 크리스 크리스티 전 뉴저지 주지사는 트럼프 법무팀을 겨냥해 “국가적 망신”이라고 맹비난했고, 케빈 크레이머 상원의원, 리사 머카우스키 상원의원, 팻 투미 상원의원 등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조속한 정권 이양을 공개적으로 촉구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완전히 백기 투항했다고 보기엔 이르다는 지적도 있다. 그는 이날 트윗에서 “소송이 강력하게 진행 중이고 계속해서 싸울 것이며, 우리가 이길 것으로 믿는다”고 자신했다. 미국사회가 선거 결과를 놓고 트럼프냐 아니냐로 갈라져 있는 만큼 일단 ‘아름다운 퇴장’으로 포장하되, 선거인단 투표가 이뤄지는 내달 초까지 반전 기회를 노리겠다는 의도다.
실제 백악관 내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소송을 담당하는 법무팀을 못미더워하고 있다는 정황이 속속 나오고 있다. NBC방송은 이날 소식통을 인용, “트럼프 대통령이 겉으론 법무팀의 노력을 칭찬했지만, 뒤에서는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19일 열린 법무팀 기자회견에서 불복 소송을 주도하고 있는 개인 변호사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과 선거캠프 법률고문이었던 시드니 파월이 음모론만 부추겼을 뿐, 정작 부정 선거의 근거를 제시하지 못해 크게 분통을 터뜨렸다는 후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법적 대응을 지속할 방침이다. 트럼프 캠프는 바이든 당선인이 1만2,000여표(약 0.25%포인트) 차로 승리한 조지아주에 수개표를 요구한 데 이어 재검표도 요청했다. 아시아 순방에 나선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이날 필리핀 마닐라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아직 법적 대응책을 다 쓰지 않았다”면서 “우리는 법치에 근거한 나라이고, 대통령은 소송을 진행 중이며 미국 시민으로서 모든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