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23일 강창일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새 주(住)일본 대사관 특명전권대사로 내정했다. 강 내정자는 4선 의원 출신이자 지난 20대 국회에서 한일의원연맹 회장을 지낸 ‘일본통’이다. 아베 신조 (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가 지난해 7월 일본의 대(對) 한국 수출규제로 촉발한 한ㆍ일 관계 경색 국면을 조속히 풀어내겠다는 적극적 의지를 담은 인선이다. 연내 한ㆍ중ㆍ일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한일관계 개선의 돌파구가 마련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춘추관 브리핑을 통해 “강 내정자는 일본 동경대학교에서 석ㆍ박사 학위를 받고 학계에서 오랜 기간 일본에 대해 연구한 역사학자”라며 신임 주일대사 발탁 소식을 전했다.
이번 인선은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 내각 출범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 등 변화한 국제외교 환경에 대응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강 대변인은 “(강 내정자는) 대일 전문성과 경험, 오랜 기간 쌓아온 고위급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경색된 한일 관계의 실타래를 풀고 미래지향적인 양국 관계로 나아가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라고 인선 배경을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앞서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을 사실상 ‘대통령 특사’로 보내는 등 한일 관계 개선 의지를 보여왔다. 박 원장은 10일 스가 총리를 만난 뒤 기자들에게 “문 대통령의 간곡한 당부와 한일관계 정상화에 대한 의지를 전달했다”며 “양국 정상이 (강제동원 배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박 원장은 스가 총리에게 1998년 ‘김대중ㆍ오부치 선언’에 이은 새 한일 정상 선언의 필요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 내정자는 지난해 8월 방일의원단을 꾸려 일본을 방문하는 등 그간 일본 정치권과 두루 소통하며 한일관계 개선의 발판 마련에 공을 들여 왔다. 강 내정자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스가 총리는 실용적 정치인이다. 자기 이념보다는 일본의 국가적 이익을 제일 먼저 생각할 것”이라며 “(한일 관계 정상화 가능성에) 기대를 많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한일관계 정상화 해법에 대해서는 “정부에서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며 “우리 정부의 의견을 잘 들어, 일본을 잘 이해시키는 게 제 역할”이라고 말을 아꼈다.
청와대와 정부는 연내 개최를 추진하는 한ㆍ중ㆍ일 정상회담가 한일 관계 정상화의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를 감안하면 지일(知日)파에 속하는 강 내정자를 주일대사로 발탁한 것이 일본을 향한 긍정적 메시지가 될 수 있다. 학자(이수훈 전 주일대사)ㆍ관료(남관표 현 주일대사)에 이어 집권 여당의 중진의원 출신을 발탁함으로써 한일관계 갈등 현안을 정치적으로 풀어내겠다는 신호로도 읽힐 수 있다.
다만 스가 총리는 앞선 13일 한일의원연맹 회장 자격으로 방일한 김진표 민주당 의원이 한중일 정상회의 참석을 위한 방한을 요청하자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고 밝히며 우리 정부에 공을 돌린 상태다.
강 내정자는 일본 정부의 대사 임명 동의절차가 마무리된 뒤 임명될 예정이다. 제주 출신인 강 내정자는 제주를 지역구로 17대 국회부터 20대 국회까지 내리 당선된 4선 의원 출신이다. 국회의원 때 한일의원연맹 부회장에 이어 회장을 역임했고 지금은 명예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주일대사 교체는 남관표 현 대사가 지난해 5월 부임한 이후 1년 반만에 이뤄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