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에 가면 접하게 되는 임플란트나 레진 충전 재료 등을 개발하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절차가 있다. 바로 세포독성시험이다. 피부자극, 알레르기 등의 여부를 미리 테스트해보는 것인데 특히 이 가운데 토끼의 털을 밀고 물질을 적용해보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피부자극성 시험으로 전세계에서 매년 약 5만마리의 토끼가 희생된다. 하지만 이르면 내년부터는 토끼의 희생을 막을 수 있을 전망이다. 이를 인공피부조직으로 대체할 대체시험법이 개발됐기 때문이다.
전세계 23개국 연구진과 피부자극성 대체시험 공동 개발에 참여한 김광만(62) 연세대 치과대학 교수와 권재성(38) 조교수는 24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의료기기 제품 연구와 허가 등을 위해 수많은 동물들이 희생되고 있다"며 "이번 대체 연구로 의료기기 업계에서 토끼 피부자극 시험은 완전히 종결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김 교수와 권 교수는 '의료기기 분야 동물대체시험법 국제공동연구팀'에 소속돼 토끼 피부 자극시험의 대안으로 인체 표피 모델(RhE)이 적합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해당 연구는 지난해 국제표준화기구(ISO)인증을 받았고, 12일에는 대체실험 활성화에 기여한 개인이나 단체에 매년 4억원의 상금을 수여하는 영국 화장품 회사 러쉬의 ‘러쉬 프라이즈’에서 로비 특별상 부문을 수상했다.
이들은 ISO인증의 의미를 높이 평가했다. 유럽연합(EU)의 경우 ISO표준기준이 나오면 각 나라 정부가 이를 법률화하면서 곧바로 현장에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식품의약품안전처가 ISO기준을 한글화해서 고시화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도입 시기는 다소 늦어질 수 있지만 대체시험 확산에는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치과대학 연구자들이 대체시험 연구에 뛰어든 건 이례적이다. 김 교수는 치과의사로 활동하다 치과재료 연구에 이어 2009년부터 의료기기에 활용되는 동물실험 대체시험 연구에 뛰어들었다. 권 교수는 영국에서 의대 졸업 후 2016년부터 김 교수의 연구에 합류했다. 이들은 “동물실험은 화장품 분야에서 주로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람 피부에 직접 닿는 의료기기 분야 역시 마찬가지”라며 “치과재료 역시 다 의료기기이기 때문에 동물실험이 만연한 분야”라고 설명했다. 의료기기 분야에서 행해지는 동물실험이 이들을 대체시험 연구를 시작하도록 하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이들은 구강점막조직자극 시험의 대체연구도 진행 중이다. 치약 등의 제품 개발을 위해 필요한 구강점막자극 시험에는 햄스터가 동원돼 왔다. 햄스터의 경우 볼록해진 볼에 물질을 적용, 이를 삼키지 못하게 하려고 목을 잡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를 인공구강점막조직으로 대체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다.
이들은 대체시험 연구가 결국 인간에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동물들의 희생을 줄이는 것뿐만 아니라 실험에 소요되는 시간이 단축되는 것은 물론 종간 차이까지 피할 수 있기 때문. 하지만 대체시험이 널리 보급되기 위해선 정부의 적극적 역할이 필수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김 교수와 권 교수는 “국내를 비롯한 개발도상국 등에서는 인공조직을 활용하는 것보다 토끼를 실험하는 게 저렴할 수도 있다”며 “동물의 희생을 줄이려면 제조사들이 대체시험법을 우선적으로 도입할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 권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