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명시적 거부 없는 청소년과 성관계도 성적 학대"

입력
2020.11.22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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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15세 청소년 성적 학대' 등 군인 성범죄 혐의
2심은 "성적자기결정권 행사 가능했다" 무죄 판결
대법 "성적 가치관, 판단능력 신중 판단해야" 파기


확실하고 명시적인 반대 의사가 없더라도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했다면 성적 학대 행위로 볼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아동복지법 및 아동·청소년성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군인 A씨 상고심에서 성범죄 부분을 무죄로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고등군사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22일 밝혔다. A씨는 2017년 10월 당시 만 15세였던 B양과 성관계를 통해 성적으로 학대하고, 같은 해 말 성관계를 하지 않으면 신체 노출 사진을 유포하겠다고 또 다른 C양을 협박해 강간하려다 미수에 그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에서는 A씨의 모든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지만 2심인 고등군사법원에선 A씨 혐의를 모두 무죄로 선고했다. 2심은 B양 사건에 대해 "만 15세인 피해자의 경우 일반적으로 미숙하게나마 자발적인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연령대로 보인다"면서 성적 학대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B양이 도중에 성관계 중지 의사를 밝혔는지 몰라도 애초 성관계를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확실히 표시하지 않은 대목에 무게를 둔 것이다. C양 사건에 대해서도 "A씨가 피해자를 간음할 막연한 생각은 가지고 있었으나 구체적 계획이나 의도를 드러내지 않았다"면서 아동·청소년성보호법상 강간 미수 등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그러나 두 사건 모두 유죄 취지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B양 사건에 대해 "아동·청소년이 외관상 성적 결정 또는 동의로 보이는 언동을 했다고 해도 타인의 기망이나 왜곡된 신뢰관계의 이용에 의한 것이라면 온전한 성적 자기결정권 행사라고 평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피해자가 성적 자기 결정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을 정도의 성적 가치관과 판단 능력을 갖췄는지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C양 사건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판단을 내렸다. A씨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복수의 계정을 만든 뒤 1인 3역까지 하면서 C양을 속이고 노출 사진을 전송받는 등 범행을 치밀하게 계획한 점에 비춰 성관계에 목적을 둔 협박이라고 봤다.


정준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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