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서울 홍은동의 오래된 주택가에 작은 와인바가 조용히 문을 열었다. 유럽10개국 60여 도시를 누비며 미식탐험을 해온 장준우(35) 셰프의 첫 음식점인 ‘어라우즈(arouseㆍ일깨우는)’다. 이탈리아 요리학교(ICIF)에서 실습을 마치고 유럽 음식기행을 한 뒤 책 '플레이버 보이' 등을 내며 그 동안 글로 음식문화를 소개해온 그가 이번에는 직접 요리를 한다. 최근 ‘어라우즈’에서 만난 그는 “재미있고 다양한 식재료로 미각 경험을 일깨워주고 싶었다”고 소개했다.
‘삼겹살이라도 다 같은 삼겹살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그의 필살기는 단연 식재료다. 한국 흑돼지를 유전적으로 복원한 재래돼지, 특수 발효사료로 키운 토종닭, 여물을 끓여 먹인 화식우, 강원 영월의 유기토에서 자란 토마토, 서해안 자숙멸치, 동해안 청어 등 마트에서는 구경조차 할 수 없는 희귀한 식재료들을 전국에서 어렵게 공수해온다. 그는 “어떤 재료로도 맛있는 요리를 하는 식당과 재료 고유의 맛을 중요시하는 식당으로 크게 나눈다면 후자에 가깝다”라며 “식재료가 주인공이 되는 공간, ‘식재료 쇼룸’에 가깝다”고 말했다.
재료가 귀하다고 맛도 좋다는 보장은 없다. 재료와 맛의 간극을 채우는 이가 요리사다. 그는 “생산자들은 다양한 품종을 개발 보존하려고 노력하지만 생산량과 가격, 유통, 홍보 등의 문제로 소비자가 잘 알지 못한다”라며 “좋은 식재료를 구해서 맛있고 돋보이게 요리하는 것이 요리사의 역할이다”라고 했다. 그렇다고 ‘최고의 맛’을 추구하는 건 아니다. 그는 “사람마다 느끼는 최고의 맛은 제각기 다르다”라며 “‘이런 맛이 나네’ ‘기존에 먹었던 것과 다른 맛이 나서 재미있다’ 등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그의 다양한 맛의 요리 밑천은 경험이다. 유럽을 다니면서 경험했던 요리를 참고해 다른 재료를 활용하거나 새로운 맛을 내는 식이다. 예컨대 구운 돼지고기에 잘 익은 무화과를 얹은 ‘재래돼지 판체타(이탈리아식 베이컨)’는 멜론을 얹어 먹는 이탈리아의 프로슈토(생햄)에서 착안한 요리다. ‘자숙멸치 타르타르’는 스페인에서 해산물을 먹을 때 로메스코(구운 채소와 견과류 등을 갈아서 만든 소스) 소스를 밑에 깔고 태운 파프리카와 견과류 등을 올리는 요리법에서 발전했다. 북유럽에서 즐겨먹는 전통음식인 ‘청어 피클’은 이탈리아의 브루스케타(납작한 빵 위에 각종 재료를 얹어 먹는 전채요리)와 만나 환상적인 궁합을 자랑한다.
어라우즈의 대표 메뉴는 없다. 그날의 재료 수급 상황 등 사정에 따라 맛은 끊임없이 변주된다. 그는 “예를 들어 우연히 좋은 연어알이 들어오면 자숙멸치 타르타르 위에 얹어 낸다”라며 “기본은 지키되 예측할 수 없는 우연과 특별함을 더해 재미를 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음식점이 아니라 와인바라고 내세운 이유도 따로 있다. 물론 그가 제안하는 수십 종의 특별한 와인들이 있다. 그는 “제 요리들은 와인과 곁들여야 맛과 경험이 증폭된다”라며 “유럽의 작은 선술집처럼 편안하게 와서 와인 한잔과 함께 특별한 재료의 색다른 맛을 경험해보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했다. 오래된 주택가를 비집고 들어선 이유이기도 하다.
그가 꿈꾸는 음식점은 일본의 ‘츠타야 서점’이다. “츠타야 서점은 단순히 책을 파는 게 아니라 책과 관련된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하게 한다. 경험을 통해 개인은 자신의 취향을 더 잘 알게 된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어떤 식재료를 쓰고, 사소하게는 어떤 식초와 소금을 썼는가에 따라서도 맛이 완전히 달라진다. 다양한 음식을 통해 스스로의 취향을 찾을 수 있는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