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르포] "원전 오염수 안전하다면 도쿄 앞바다에 방류해 보라"

입력
2020.11.2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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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원전 남쪽 항구 이와키시 주민들
"오염수 방류 시간문제" 원망과 체념 교차

지난달 30일 오전 일본 후쿠시마현 남동부 이와키시 오나하마항. 평온해 보이는 바다와 달리 주민들의 속내는 복잡했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40㎞ 떨어진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의 방사성 물질이 포함된 오염수를 바다로 흘려 보내는 방침이 사실상 굳어졌다는 소식이 들리면서다. 일본 정부는 "아직 결정한 바 없다"고 밝혔지만 주민들은 정부의 발표를 시간 문제로 여기고 있었다. 주민의 반대 목소리에 귀를 닫은 채 결정을 서두르는 정부에 불만을 쏟아내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정부 방침이 정해지면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방사능 오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보통의 일상'을 바라고 있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염수 해류 타고 한국·중국에 퍼져... 반발 당연"

오나하마 어시장 맞은 편 수산물 상가에서 생선 소매상을 운영하는 야마자키씨는 정부에 대한 불신을 그대로 드러냈다. 그는 "정부 말대로 오염수가 안전하다면 도쿄 앞바다에 먼저 방류해 보라"며 "수도권 주민들이 납득한다면 후쿠시마 앞바다에 방류하는 결정을 수용하겠다"고 했다.

이 같은 주장의 배경에는 폭발사고가 발생한 후쿠시마 제1원전 운영사인 도쿄전력이 생산한 전기는 도쿄를 포함해 수도권 주민들에게 공급되기 때문이다. 반면 후쿠시마현 주민들은 도호쿠전력이 생산한 전기를 사용한다. 그는 "도쿄전력이 생산한 전기의 혜택은 수도권이 누리면서 왜 원전 사고와 오염수 피해는 후쿠시마현 주민들이 겪어야 하느냐"며 목청을 높였다. 그러면서 "오염수는 해류를 타고 한국과 중국, 미국 등으로 퍼져나갈 수 있다"며 "주변국들이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다.

같은 건물의 여성 상인은 "지난 9년 간 방사선량 측정 검사를 통과한 안전한 생선만 판매해 왔다"며 "어려운 가운데 어민들은 시험 조업을 시작했고 우리도 매상을 조금씩 회복해 왔는데 오염수를 방류하면 그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된다"고 걱정했다. 생선을 사러 온 주부 이와타 유미코(岩田弓子)씨는 "정부가 주민 반대 의견은 안중에 없이 결정을 서두르는 것은 무책임하다"며 "주민을 대변해야 할 후쿠시마현마저 중앙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찬반 입장을 분명히 밝히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참치 소매상에서 일하는 남성은 "오염수 저장탱크가 포화상태에 이르기 때문에 정부가 결정을 서두르는 것을 이해한다"며 "어업 종사자를 중심으로 반대 목소리가 크지만 정부가 결정하면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했다.

"방류 후 피해 밝혀지면 그 땐 이미 늦어"

오후에는 원전 오염수 방류 반대운동을 벌이는 시민들과 대화 기회를 마련했다. 오다 지요(織田千代) '더 이상 바다를 더럽히지마! 시민회의' 공동대표는 "원전 사고 이전까지는 시버트(Sv·인체 피폭 방사선량 측정 단위), 베크렐(Bq·방사능 방출 능력 측정 단위), 트리튬(삼중수소) 등의 말들은 전혀 몰랐다"며 "방사성 물질의 위험을 알리기 위해 정부를 상대하고 주민에게 설명하느라 이 같은 말들을 사용해야 하는 현 상황이 낯설다"고 했다.

오다 대표는 "트리튬 등 방사성 물질을 포함된 오염수가 방류된 이후 인체에 해가 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그 때는 이미 늦은 것"이라며 "이러한 사태를 막기 위해서도 다른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트리튬 정화 기술이 개발될 때까지 탱크에 저장해 두거나 시멘트와 모래로 모르타르 고체화하는 방안 등을 대안으로 거론했다.

지난 2월 주무 부처인 경제산업성이 작성한 보고서는 해양 방류가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밝혔다. 오다 대표는 "주민들에게는 '가장 비용이 적고 손쉬운 방법이라서 결정했다'는 말로 들릴 뿐"이라고 했다. 주민의 건강과 안전보다 경제성만을 따진 결론이라는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당초 검토된 5가지 처분 방식 중 해양 방류 비용은 34억엔(약 365억원)으로 가장 적다. 해양 방류와 함께 최종 후보에 오른 대기 방출 방식은 349억엔(약 3,754억원)이 소요된다.

"아이들에게 뭐라 설명해야 할까요"

스즈키 가오리(鈴木薰) 이와키 방사능시민측정실 '다라치네' 사무국장은 오염수 문제가 일본에서도 '후쿠시마현의 문제'로 비치는 현실을 우려했다. 그는 "오염수 문제를 전국적으로 공론화하면 원전 건설 등의 보다 근본적인 문제로 확대될 수 있기 때문에 정부가 후쿠시마의 문제로 축소해 결정을 내려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스즈키 국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두려운 이유는 특정 지역만 발생하는 게 아니라 어디서든 누구나 감염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라며 "오염수 방류에 따른 피해도 언제 어떤 식으로 나타날지 아무도 몰라 우리 모두의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오염수 문제 등에 대한 자유로운 논의 대신 '원전은 안전하다'라고만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교육 현장의 문제점도 꼬집었다.


다라치네는 2011년 3월 원전 폭발사고 후 방사능 오염 피해를 겪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설립한 비영리법인이다. 세슘과 스트론튬-90, 트리튬 측정기를 갖추고 지역에서 채취한 토양, 바닷물, 식품 등의 방사능 측정 결과를 공표한다. 사고 후 지역 어린이들에게서 갑상선암이 발견되면서 주민을 대상으로 1만 건 이상의 갑상선 검진을 실시했다. 2017년엔 다라치네 클리닉을 설립해 어린이뿐 아니라 주민들의 심신을 돌보고 있다. 스즈키 국장은 "여기서 활동하는 분들은 전문가들이 아니라 일상을 지키기 위해 팔을 걷고 나선 보통사람들"이라고 했다.

다라치네에서 만난 이다 아유미(飯田亞由美)씨는 초등학교 5학년생인 큰 아들이 TV 뉴스를 보고 오염수 문제를 물어봐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그는 "아이들에게 수영장 안에서는 오줌을 싸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다"며 "그런데 정부가 원전에서 발생한 더러운 물을 바다로 흘려 보내려고 한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막막했다"고 말했다. 두 아이의 엄마인 네모토 후미코(根本富實子)씨도 "후쿠시마에서 계속 살겠지만 30~40년 걸리는 폐로 작업 등을 생각하면 걱정된다"며 "다음 세대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도 정부를 포함한 부모 세대들이 오염수 문제부터 제대로 된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키= 김회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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