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살이, 편리하지만 버겁기도 해"

입력
2020.12.09 13:00
19면
<15>  서울공화국
사회적 인프라 집중된 서울행 여전히 '대세'
물가·집값, 환경문제… 적잖은 문제도 수반
"지방인재 우선채용 취지는 공감하지만…"
못 견디고 떠나는 사람들, '탈서울' 조짐도
"과감함·뚝심만이 서울공화국 탈피 해법"

편집자주

이슈와 화젯거리를 이야기할 때 기성세대는 자주 핏대를 세웁니다. 그들의 목소리가 워낙 크다 보니 밀레니얼 세대는 의견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의견 표출의 기회가 없었을 뿐입니다. 한국일보 인턴기자들이 기성세대와는 다른 밀레니얼의 시각을 담아 한국 사회를 ‘언박싱’ 해보겠습니다. 밀레니얼의 솔직한 체감지수를 느껴 보세요.


통계청이 지난 8월 발표한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총인구는 5,178만명입니다. 이 가운데 20% 정도가 서울에 살고 있으며, 수도권으로 범위를 넓히면 전체 인구의 절반이 모여 있습니다.

최근 높은 물가와 치솟는 집값을 견디지 못하고 서울을 떠나는 젊은이들도 나오고 있지만, 그렇다고 서울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가 바뀐 것은 아닙니다. 밀레니얼 세대만 (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 사이에 출생한 세대) 보더라도, 서울은 여전히 가까이하고 싶은 곳입니다. 대학입시를 앞둔 고교 3학년 대다수가 ‘인서울(서울에 위치한 대학)’을 가는 게 1차 목표일 정도니까요. 교통이 편리하고 일자리가 지방보다 많다는 점도 서울이 사람들을 유인하는 동력입니다.

하지만 '서울공화국'의 부작용이 속출하면서, 그동안 다양한 국가균형발전 정책이 시행됐습니다. 공공기관 이전, 지방국립대 육성, 신공항 건설 등은 밀레니얼에게도 낯설지 않은 정책들입니다. 하지만 서울과 비(非)서울의 격차가 여전한 것을 보면, 이 정도 정책으론 역부족인 것 같습니다.

지역인재 채용이 수도권을 역차별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제기된 공정성 논란은 '서울공화국'이 만든 또 다른 모습입니다. 이처럼 서울을 둘러싼 다양한 이슈가 만들어지는 걸 보면, 서울은 우리에게 단순한 수도가 아니라 특별한 의미를 지닌 도시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습니다. 생활권은 서울이지만, 출신지역은 제각각인 한국일보 인턴기자들이 서울공화국의 이면을 언박싱 해봤습니다.

밀레니얼의 서울살이, 장점과 단점은

양꼬치엔 닭꼬치(양닭): 서울로 출퇴근하는 길은 여전히 지옥이야. 직장 바로 앞에 살았으면 좋겠어. 서울 사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럽더라고.

귀한곳에 누추한분(귀누): 그렇게 부러워할만한 일이 아냐. 서울살이의 가장 큰 고충은 살인적인 주거비용이야. 학교 근처 건물 옥탑방에 사는데,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47만원이야. 다른 곳들보다는 저렴하지만 그래도 부담돼. 요즘 이 문제로 우울해.

펭수야 사랑해(펭사): 나는 오피스텔에 사는데, 월세가 65만원이야. 집에 손 벌리기 미안해서 40만원 정도는 아르바이트로 충당하고 있어.

분당동 갈치발(분갈): 나는 관악구청 부근 전셋집에서 동생이랑 사는데, 10평 집이 2억 1,000만원이나 해. 2명 살기엔 좁은데, 요즘 전셋값이 너무 올라서 이것도 겨우 구했어.

티나: 난 신촌에서 하숙하는데, 혼자 사는 할머니 보살펴 드리는 조건으로 방을 하나 얻었어. 거동이 불편하셔서 밥도 같이 먹어야 하고, 문 열고 계속 할머니를 지켜봐야 해. 서울살이가 순탄치만은 않아.

귀누: 내 동생은 전남 순천에서 자취했는데, 보증금은 거의 없고 월세도 40만원이 안 돼. 그런데 내 방보다 훨씬 크고 TV까지 있었어. 서울에서 원룸 살 돈이면 지방에선 훨씬 좋은 곳에서 살겠구나 싶었어.

줌으로 공부함(줌공): 나도 서울에서 자취한 적이 있는데, 반지하도 아니고 그냥 지하였어. 햇빛이 아예 안 들어와서, 늘 우울했어.

펭사: 나는 행운아네. 서울살이 청년들을 위한 정책으로 혜택을 봤으니까. '청년주택 공공임대'에 지원했는데 휘경동 쪽에 당첨됐어. 내년 입주 예정인데, 월세가 겨우 10만원이야.

양닭: 이렇게 주거문제 해결이 만만치 않은데도 사람들이 서울로 몰려드는 걸 보면 이유가 있는 것 같아.

분갈: 서울은 편의시설이 정말 많아. 옆 건물에 카페랑 미용실 있고, 3분 거리에 대형마트·음식점·스터디카페 같은 게 다 있어.

줌공: 지방 살다가 신촌으로 올라와보니 문화 인프라가 잘 갖춰진 게 가장 좋았어. 늦은 시간에도 독립영화 마음껏 볼 수 있거든. 이런 인프라는 지방에는 거의 없거든.

펭사: 서울에서 살다가 부모님이 용인 수지로 이사를 했거든. 그런데 경기도만 해도 버스나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이 서울과는 비교가 안 되더라고. 불편하다는 거지.

귀누: 맞아. 서울에선 버스가 늦게까지 다니잖아. 지방에선 놀다가 급하게 집에 들어가거나 택시 타는 경우가 많잖아. 대중교통만큼은 서울이 최고야.

펭사: 요즘 서울살이는 스마트폰만 있으면 오케이 아닌가. 현금인출, 교통카드 안 되는 게 없어.


편리하지만 서울살이가 버거운 이유

양닭: 서울이 살기는 편한데, 경제적 문제로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서 자발적 '서울 탈출족(族)'이 늘어나고 있다는데, 사실일까. 어렵사리 서울 입성에는 성공했지만, 물가나 집값이 너무 비싸서 결국 다시 지방으로 돌아간다는 거지.

귀누: 글쎄, 내 주변에선 지방으로 로스쿨 가는 경우밖에 못 봤어. 서울살이를 포기하는 건 신분상승을 포기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거든. 특히 서울 살다가 수도권으로 가는 걸 서울 탈출이라고 보기는 힘들지. 직장은 서울에 두고 출퇴근 가능한 경기도로 이사하는 거라서, 완전히 서울을 버리는 건 아니지.

줌공: 그렇다면 서울 탈출의 진짜 의미는 직장까지 옮긴다는 거잖아. 그런데 그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해. 30~40년은 내다보고 짜야 하는 계획이잖아.

양닭: 그런데 요즘은 일자리가 서울을 떠나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해. 경기도나 더 먼 지방으로 일자리를 찾아가는 사람들을 봤거든. 서울에 일자리가 많다지만 사람도 많으니까 서울살이 메리트가 점점 사라지고 있어. 물가나 집값에 짓눌리기도 싫고.

귀누: 환경문제도 심각하지. 길거리 지저분하고 미세먼지도 심하고. 코로나 때문에 그런 문제가 더 심해졌어.

펭사: 대중교통이 편리하지만 불편한 점도 많아. 지하철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타고 내릴 때 쌓이는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거든.

줌공: 맞아. 수도권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면서 소모되는 에너지가 너무 커. 1시간 넘게 지하철 타고 버스 타고 집에 도착하면 진이 빠져버려.

분갈: 나는 서울에 녹지가 많지 않아서 살기 싫어. 지방 신도시만 해도 근처에 큰 공원이 많고 공기도 맑거든.

귀누: 가끔은 서울 사람들이 싫을 때도 있어. 서울 사는 친구들이 너무 서울 중심으로 생각하거든. 예를 들어 동네를 이야기 할 때도 서울지역만 동네만 언급하고, 약속을 잡아도 무조건 서울에서만 잡아.

펭사: 맞아. 경기도나 인천에 사는 친구들이 많으면, 약속장소가 달라질 수도 있잖아. 그런데 서울 애들은 무조건 자기 집 근처에서 보자고 하더라고.

귀누: 분당이나 일산 사는 친구들 만날 때도 내가 그쪽으로 건너간 적이 없어. 그 친구들이 먼저 포기해서 그냥 홍대에서 만나자고 말해. 서울 만남이 너무 당연시됐어.

양닭: 맞아. 직장이든, 대학이든, 약속이든 무조건 서울로 가야 하잖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래서 요즘엔 일부러 서울을 멀리하고 있어.


서울대 이전부터 지역인재 채용까지

귀누: '서울 공화국' 해결책으로 서울대 이전 이야기가 계속 나오잖아. 극단적 해법이긴 하지만, 학벌주의와 서울 과밀화 문제를 동시에 꼬집는 거니까.

줌공: 사람들이 서울대를 가고 싶은 건 서울대 인프라나 교육수준이 탁월해서가 아니라, 서울대 간판 때문에 가는 거잖아. 지방대도 교육 커리큘럼은 잘 돼있어.

줌공: 지방인재 우선채용 얘기가 나오면,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온 대학생들이 종종 억울하다고 말해. 지방에서 나고 자라서 대학만 서울로 온 것뿐인데 왜 자기가 지방인재가 아니냐는 거지. 그런데 서울로 대학 다니는 지방 사람에게도 지방인재 채용을 적용하면 그것이야말로 학벌주의나 서울 쏠림현상을 더 부추길 것 같아.

펭사: 그럼에도 지역인재 채용비율을 50%까지 늘린다면 너무한 거 아닌가.

양닭: 맞아. 블라인드 채용하면서 이제 고향이랑 대학은 쓸 수가 없어. 그런데 수도권에 사람이 많은 건 사실이잖아. 그러면 비율이라도 조정을 해야지. 지방인재 채용 기준이 대학에만 맞춰진 거는 수정할 필요가 있어. 대학이나 지역을 떼고 '사람' 기준으로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

귀누: 학벌주의가 나쁜 건 맞지만 우리가 만든 게 아니잖아. 공부를 잘해서 서울에 있는 대학에 온 것뿐이고, 성적에 맞춰서 입학했을 뿐인데, 정책적으로 차별을 받는다면 이것이야말로 역차별 같아.

줌공: 그럼에도 지방인재 채용 대신 모든 대학생에게 정정당당히 경쟁하라고 말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 서울 소재 대학에 다니는 것과 지방대를 다니는 것은 인프라 차이로 인해서 결과의 차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거든. 그런 차이를 무시하고 형식적 공정성만 주장해선 안 된다는 거지. 지방대를 나온 사람들은 비교적 열악한 환경에서 교육을 받았으니 그런 무기라도 쥐여주자는 거지.

분갈: 그렇지만 서울에서도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애들이 있어. 그 친구들이 단지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갔다고, 좋은 인프라 혜택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오히려 내가 아는 한, 지역균형전형으로 서울 소재 대학에 입학한 지방 학생들 가운데 경제적으로 부유한 애들이 엄청 많아.

귀누: 듣고 보니, 지방 학생들을 위한다는 제도가 취지는 좋은데 허점도 많아 보이네. 개인마다 처한 사정이 모두 다르니, 모두를 만족시키기는 어려울 것 같고. 이럴 바엔 차라리 실력으로 줄 세우기를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서울 중심 탈피할 방법은 없을까

줌공: 서울공화국을 벗어날 해법을 찾는 건 교육문제 해결책을 찾는 작업만큼 어려운 문제 같아. 이해당사자도 많고 변수도 많잖아. 사회의 근본 구조를 뜯어고쳐야 하는 일이라 저항도 많을 거고. 더구나 서울살이의 여러 이점을 모두 버리고, 당위성만 내세워 지방으로 내려가라는 건 전혀 현실적이지 않잖아. 단순히 공기업이나 국립대가 지방으로 이전한다고 해결될 문제 같지는 않아.

귀누: 미국이나 유럽을 보면 아예 특정 지역에서 캠퍼스타운 역할을 하는 대학들이 있잖아. 스웨덴의 웁살라 대학이라든지. 그런 곳은 대학이 지역경제를 먹여 살려. 그런 경우는 좋은 거 같아. 거기서 일자리가 파생되면서 선순환하니까. 카이스트가 대전에 있어서 대전이 과학도시 효과를 보는 것처럼. 그래도 대학 이전이나 지방대 강화만으론 균형발전 효과를 보는데 한계가 있을 거야. 공공기관이나 공기업을 지역으로 이전해도 근본적 해결책은 안 될 거고. 한전 본사가 나주에 들어섰는데, 거기 다니는 사람들은 대부분 광주에 살잖아. 결국 지방에 기업과 인프라가 확충돼야 해. 그렇지 않으면 일자리가 많은 서울로 사람들이 다시 몰릴 테니까.

펭사: 그래서 아예 수도를 세종으로 이전하자는 얘기도 나왔잖아. 최근에는 국회를 세종으로 옮긴다는 얘기도 나오고. 진짜로 옮길 거면 대학이고, 국회고, 청와대고 화끈하게 모두 옮겨야 해. 그래야 효과가 날 듯해.

분갈: 코로나로 재택근무나 유연근무제 같은 언택트 시대의 이점이 부각되고 있잖아. 이런 근무체제가 정착되면 서울 탈출이 가능하지 않을까. 물론 재택근무가 일부 계층에만 열려 있는 특권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수도권 과밀화를 줄이는 데는 확실히 도움이 될 것 같아. 일주일에 한두 번만 본사에 나오고 다른 날에는 집에서 일하면 부담없이 지방에 거주할 수 있잖아. 스타트업에선 이렇게 하는 곳이 많은데, 대기업은 거의 안 하더라고. 서울이 그렇게 좋은가.

정리=이인서 인턴기자

참여=김단비, 노지운, 왕나경, 장수현, 장채원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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