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이 넘어야 할 중동의 '쓰라린 유산'

입력
2020.11.22 10:00
25면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는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의 당선으로 막을 내렸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동 정책은 어떻게 변화할까? 언론에서는 각종 전망이 하루가 멀다 하고 등장하고 있다. 미국 신임 대통령이 당선되면 어김없이 무수한 예측들이 나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정작 임기 말의 시점에서 되돌아보면 적중한 것은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정확하지 않은 미래 전망보다 더 궁금한 것은 바이든 당선자에 대한 현지 아랍인들의 시선이다.

궁금증을 해소해 줄 단서를 찾아냈다. 선거 기간인 지난 달 10월 영국에 본부를 둔 여론조사기관 유고브(YouGov)와 사우디아라비아의 언론사인 아랍 뉴스(Arab News)는 중동 지역 18개국 국적으로 구성된 3,097명의 아랍인들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트럼프와 바이든 후보 가운데 누가 당선되는 것이 중동 지역을 위해 더 나은 선택일까' 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49%의 아랍인들이 둘 다 지역을 위해 좋을 것 같지 않다고 답했다. 나머지 응답자 중에서는 바이든 후보가 중동 지역에 좋은 선택이라는 대답이 39%로 트럼프 후보를 선택한 12%에 비해 다소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오바마 행정부에 대한 평가를 묻는 질문도 눈길을 끌었다. 바이든 당선인이 오바마 행정부에서 부통령직을 수행한 만큼 바이든 행정부에 대한 아랍인들의 기대감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조사 결과는 부정적 평가가 많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응답자의 53%에 달하는 아랍인들이 오바마 대통령이 중동 지역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고 지적했고, 바이든 후보는 오바마 시기 대중동 정책 기조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의견이 58%에 달했다.



다수의 아랍인들은 왜 트럼프와 바이든 두 후보 모두 중동 지역을 위해 좋은 선택이 아니라고 응답했을까? 아마도 미국 대통령 한 명이 바뀐다고 해서 혼란스러운 지금의 상황이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았을까. 오바마의 민주당 정권과 트럼프의 공화당 정권 모두 중동 지역에 혼란만 가중시켰을 뿐이라는 냉엄한 평가 속에서 누가 되든 극적인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얘기일지 모르겠다.

문득 런던 정치경제대학교(LSE)의 파와즈 게르게스 교수가 쓴 '오바마와 중동'이라는 책이 떠올랐다. 이 책의 제1장에는 미국과 중동 지역의 역사적 상호작용 속에서 생성된 ‘쓰라린 유산(A Bitter Legacy)’에 관한 설명이 나온다. 게르게스 교수는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되던 당시만 해도 그렇게 나쁘지 않았던 미국과 중동 국가 간의 관계가 냉전과 탈냉전 시대를 거치며 어떻게 적대감을 만들어 낸 쓰라린 유산을 심화시켜 왔는지를 보여 준다.



이처럼 미국과 중동 관계의 역사 속에서 곪아 버린 아픈 유산은 바이든 당선인에게도 고스란히 전승될 것이다. 어쩌면 트럼프 시대를 거치며 눈덩이처럼 불어나 있을지 모르겠다. 트럼프 행정부 시기 아랍인들의 미국에 대한 반감은 그 전보다 더욱 커진 것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사실은 이번 여론조사 결과에도 일정 부분 반영되어 있다.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는 이유로 89%에 달하는 아랍인들이 2017년 12월 이스라엘 주재 미국 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 문제를 지목했다. 역사적, 종교적으로 민감한 예루살렘 문제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주의 정책은 아랍 무슬림들의 미국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키우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쓰라린 유산을 안고 출범하는 바이든 행정부 역시 얽히고설킨 중동의 난제를 풀어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실낱같은 기대를 갖고 눈여겨볼 필요가 있는 관전 포인트 몇 가지를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악화일로를 걸어온 미국과 이란 관계는 변화될까?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간 갈등 구도는 완화될까? 아브라함 협정으로 개시된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 간의 화해 무드는 지속될까? 트럼프 행정부 시기 우선순위에서 밀렸던 시리아 문제에 대한 개입이 강화될까? 교착상태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는 돌파구를 마련할까? 모든 문제가 녹록지 않은 상황이지만 바이든 시대 중동 지역에 새로운 희망이 살아나길 기대해 본다.

김강석 단국대 GCC국가연구소 전임연구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