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 마음 속으로 깊이 존경하던 소중한 사람을 잃으면서 삶의 동기가 사라진 적이 있었어요. 내면의 자긍심이 됐던 이가 떠나자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세상이 원망스럽고 낙심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때 노부스콰르텟이 무대에서 연주하는 이 곡을 들었죠."
국내 클래식계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 중인 기획사 목프로덕션을 이끄는 이샘 대표에게 베토벤 현악4중주 15번(작품번호 132)은 그런 무게감으로 남아 있다. 심연으로 가라앉은 이 대표를 끌어올린 구원의 노래였다.
베토벤은 1825년 이 곡을 쓰면서 2악장까지만 작업을 하고, 완결을 짓지 못한 채 병마와 싸우게 된다. 가까스로 병상에서 회복한 베토벤은 그래서 3악장부터 다시 태어난 기분으로 써내려 갔다. 이렇게 완성된 현악4중주 15번은 모두 5악장으로 구성돼 있는데, 연주시간이 50분에 달하는 대작이다.
베토벤이 부활한 뒤 쓴 3악장에는 '병에서 회복한 자가 하나님께 드리는 리디아선법의 감사 기도'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때문에 이 대표는 "악장 별로 아름다움과 깊이를 설명하자면 끝이 없지만, 3악장을 빼놓고 이 곡을 논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 대표는 "3악장의 성스러운 기도를 듣고 있다보면 누군가가 나를 일으키는 힘을 느낄 수 있다"며 "베토벤의 영적인 후기 작품들 중에서도 특히 신을 또렷하게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배경 덕분에 이 작품은 코로나19로 고통받는 요즘 시대에 시의성이 크다. 이 대표는 "어려운 시기에 음악을 한다는 것이 배부른 소리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음악에는 치유의 힘이 있고, 절망에 빠져 있는 우리를 일어서게 만드는 희망이 담겨 있다"고 했다.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이 대표는 하겐콰르텟과 벨체아콰르텟이 연주한 베토벤 현악4중주 15번을 추천했다. 이들은 현존하는 최고의 현악4중주단으로 꼽히는 만큼 깊이감이 남다른 베토벤의 해석을 들려준다.
22일 이 대표는 한국일보와의 '선데이 모닝 클래식' 연재를 마무리하며 "앞으로도 연주자들과 함께 삶의 모든 것을 바쳐 공연을 올리고, 관객의 영혼을 다독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