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둘러싼 더불어민주당의 속내가 복잡하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이번 국회에서 처리한다는 원칙에 변함이 없다"면서 강한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하지만 당 내부에선 '과잉입법이 될 수 있다'는 반대 의견이 여전하다. 정기국회가 20일 정도 남았지만, 당 내부 입장이 모이지 않으면서 법안 처리가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민주당 지도부 내에서도 '노동자가 사망하는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해 기업을 규제한다'는 대원칙에는 이견이 없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노동자 사망 등 중대 산재를 막지 못한 책임을 경영책임자에 직접 묻고, 징벌적 손해배상도 가능케 한다. 산재 발생에 책임 있는 이들에게 엄벌을 내려 재발을 막겠다는 취지다.
문제는 처벌 조항이다. 형사처벌 강화가 실제 산재 감소로 이어질 지 의문을 제기하는 의원들이 적지 않다. 민주당의 한 최고위원은 19일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산재를 줄여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공유하고 있으나, 처벌조항을 만든다고 제대로 처벌이 될지에 의문을 제기하는 반론도 있다"고 말했다. 형사처벌 강화가 능사가 아니라는 의원들은 '경제제재' 만으로도 산재를 예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장철민 민주당 의원이 17일 대표 발의한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개정안에 이런 내용이 담겨 있다. 해당 법안에서는 사업주가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위반해 3명 이상이 동시에 사망하거나, 1년에 3명 이상이 사망하면 100억원 이하의 과징금을 물릴 수 있다는 게 개정안의 골자다. 이에 대해 장 의원실 관계자는 "지금도 산안법상 사망사고 처벌 규정은 작지 않다"며 형사처벌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현행 산안법은 사망 사고가 발생하면 사업주에게 7년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을 물게 하고 있다. 이는 형법의 업무상 과실치사 처벌 조항(5년 이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보다 강하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적용 범위를 두고도 민주당 내에서는 이견이 나온다. 해당 법에서 기업체 사업장 뿐 아니라 공중이용시설, 대중교통에서 발생하는 인명피해를 다뤄 자칫 소상공인의 경제활동도 제약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이다. 한정애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19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기간 시설이나 다중이용시설, 식당까지 다 들어가 있다"며 "산안법과 대상이 다르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 정책위는 최근 당 지도부에 '소상공인 등 다른 경제주체에 미칠 파급효과를 고려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이 이번 정기국회 내에 최우선 순위로 관철시키겠다고 한 ‘공정경제 3법(공정거래법ㆍ상법ㆍ금융그룹감독법)' 처리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속도를 내기 어려운 이유로 꼽힌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인명사고 발생시 형사처벌 대상을 이사와 대표이사뿐 아니라 사업상 의사 결정에 실질적으로 관여하는 경영책임자까지 포함시켰다. '공정경제 3법'에 반발하는 재계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까지 완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재계를 다독여야 하는 민주당 입장에서는 이를 한번에 밀어붙이기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이번 정기국회 내 제정될 가능성은 현재까지 크지 않아 보인다. 민주당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산안법 개정안은 환경노동위원회에서 각각 논의한다는 방침이다. 김영진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제정법이라 공청회를 거쳐야 한다. 12월 2일 본회의에서 통과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