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쌍함만 강조하는 동물 보호소 문화, 이젠 바꿔야죠"

입력
2020.11.2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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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 유기동물 보호소 ‘더봄센터’ 개관 
안락사 없는 보호소, 시민의식 일깨우는 전진기지
 '사지 말고 입양'하는 반려문화 기준 제시



개관 선언과 함께 박이 터진다. 박이 터지면 속에 있던 꽃가루와 현수막이 흩날린다. ‘가여움이 아닌 반가움의 공간’, ‘더봄센터 개관을 환영합니다’ 양쪽 현수막에 적힌 문구를 본 참가자들은 환호성과 박수로 화답한다. 청군과 백군이 오자미를 던져 먼저 박을 여는 예전 가을운동회 컨셉트다.

단 이날은 청군과 백군 대신 백구 두 마리, ‘녹두’와 ‘밀’이 나섰다. 그래서 오자미 대신 박에 줄을 연결하고, 그 줄에 간식을 매달았다. 백구들이 간식을 먹을 때 자연스레 줄이 당겨지면서 박이 열리면 행사는 성공적. 동물권행동 ‘카라’의 염원이던 ‘더봄센터’ 개관식 마무리 계획은 완벽했다.

그러나 반려견들이 언제 사람들 마음대로 움직이든가. 두 백구는 간식도 마다한 채 딴청이다. 결국 줄은 사람 손으로 당겨졌다. 하지만 문제될 건 없었다. 박이 어찌 열리든 지난달 15일 ‘더봄센터’ 개관식 참석자들은 흥이 넘쳤다. 국내 유기동물보호소의 표준을 마련했다는 자부심과 앞으로의 기대가 어우러진 자리였다.



더 들여다 봄, 더 돌봄...그래서 더봄


연간 13만 마리의 유기동물이 발생하는 현실. 현실적으로 모든 유기동물을 구조하는 건 불가능하다. 현실을 근본적으로 바꿀 방법은 무언가. 동물권단체 카라는 그것이 동물 구조보다는 이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시민의식이 자리잡도록 하는 것이라고 봤다. 더봄센터에 대한 카라의 고민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카라는 독일의 ‘티어하임’(Tierheim·동물의 집)을 더봄센터의 롤모델로 정했다. 독일의 유기동물 보호입양 비영리시설인 티어하임은 현존하는 가장 선진적인 동물보호소로 평가 받는다. 티어하임은 유기동물 친화적인 건물구조와 프로그램 등으로 유명하다. 단순 보호를 넘어 유기동물이 인간사회에 함께하기 위한 준비과정을 거치는 곳을 표방한다. 그렇게 매년 90% 전후 입양률을 유지하며 안락사 없는 보호소로 자리매김했다.

카라는 우선 독일에만 500개가 넘는 티어하임 중 가장 선진화된 베를린 티어하임을 직접 방문하며 사전조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모금 등을 통해 2017년 6월 부지를 마련하고, 올해 4월 센터를 준공했다. 건물은 지난 4월 다 짓고, 동물들도 보호를 시작했지만, 코로나19로 개관식은 연기해왔다. 센터를 짓기로 하고 모금활동을 했던 시기부터 개관식까지 꼬박 4년이 걸렸다. 임순례 카라 대표는 “지난해에는 ‘케어’사태로 동물단체들의 모금활동이 얼어붙었고, 올해는 코로나19로 건립과정에서 변수들이 많았다”고 했다.


경기 파주시 법원읍에 자리잡은 센터는 지하1층, 지상2층(연면적 1,828㎡)규모다. 센터명 ‘더봄’은 더 들여다 보고, 더 돌본다는 이중적 의미를 지녔다. 센터에는 견사 84개와 묘사 12개를 비롯해 동물병원과 교육장, 산책로와 놀이터, 중앙정원 및 옥상정원 등도 들어섰다. 돌봄과 입양, 봉사, 교육이 한 곳에서 모두 가능하다. 현재 약 150여마리의 동물이 생활하며 돌봄을 받고 있다.

전진경 카라 이사는 “늘어진 원모양의 센터에는 원헬스 개념이 도입됐다”고 했다. 원헬스는 인간, 동물, 환경이 운명공동체로 연결됐다는 의미다. 셋 중 어느 하나만 건강하지 못해도 모두 위태롭다는 논리를 센터 외관과 운영에 녹였다. 센터는 3층 건물임에도 동물들이 입양 전 미리 아파트생활 에티켓을 배울 수 있게 엘리베이터를 설치했다. 운영면에서도 센터 동물 중에 평생 입양을 못 가는 경우가 있다고 해도 절대 안락사를 하지 않는다.

고양이 문제행동 개선 TV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김명철 수의사는 “행동학을 기반으로 한 보호센터가 국내 처음 문을 열었다”고 평했다. 더봄센터 묘사 디자인에도 참여한 김 수의사는 “영역동물인 고양이의 특성을 고려했다”며 “한 묘사에서 생활하는 고양이들간에 화장실과 휴식공간 등의 핵심영역이 겹치지 않고 분산시키는데 신경 썼다”고 했다.



가여움이 아닌 반가움의 공간


이날 더봄센터 개관식에는 각 분야 인사 60여명이 참석했다. 서울대 동물병원장인 황철용 수의사와 유기동물 입양정보앱 ‘포인핸드’ 대표인 이환희 수의사 등 해당분야 인사 외에도 더봄센터 건립추진위원으로 활동한 배우 문소리씨, 작사가 김이나씨 등도 참석했다. 임 대표는 “한국의 동물권 증진이라는 공통 분모가 있음을 잊지 않겠다”고 했다. 건립추진위 활동 등으로 모인 센터 건립 후원금은 총 7억7,000만원에 이른다. 성악가 조수미씨와 함께 더봄센터 건립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았던 김이나씨는 ‘가여움이 아닌 반가움의 공간’이라는 더봄센터의 상징 문구를 지었다. 김씨는 “불쌍함을 강조하는 연민에 기대어 보호시설을 꾸려가는 건 이젠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점점 더 강한 연민으로 사회를 자극하는 방식으로는 보호시설의 건강한 운영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카라도 센터 내 동물은 사회화 교육을 적극 진행하고, 시민들에게는 유기견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활동으로 올바른 입양문화를 만드는 일에 집중한다. 김나연 카라 활동가는 “사람을 두려워하는 상태로 구조됐지만, 센터에서 개체별로 행동평가와 사회화 교육을 통해 입양된 ‘우엉’이가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지난 5월말 경기 파주시 한 공장에서 구조된 개 74마리 중 하나였던 우엉이는 여느 가정집에서 유기된 동물들에 비해 특히 경계심이 강하고, 두려움도 많았다. 하지만 구조 후 센터에서 상처 치료와 사회화 교육을 받고 지난 8월 한 부부에게 입양됐다. 김활동가는 “시골 공장에서 갑자기 도시로 활동반경이 바뀐 우엉이가 생각보다 잘 적응하고 있다는 소식을 입양부부에게 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더봄센터 같은 인프라가 없었으면 우엉이의 입양이 쉽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에 기억이 많이 난다”고 했다. 지난 4월부터 운영을 시작한 더봄센터를 통해 이달 17일까지 입양된 유기동물은 185마리다.


지난 14일에는 센터 개관식 후 처음으로 회원과 비회원 모두를 대상으로 더봄센터를 둘러보는 ‘더 반가운 투어’도 열렸다. 시민들은 더 반가운 투어를 통해 센터 동물들의 밝은 모습을 직접 확인했다. 환경만 갖춰지고 교육이 이뤄지면 유기동물들도 입양을 통해 충분히 우리 사회의 또 다른 구성원으로 편입될 수 있다는 사실을 되새기게 하려는 목적이다. 행사는 아직 코로나19로 인한 대규모 모임이 어려운 만큼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준수하며 소규모로 치러졌다. 전 이사는 더봄센터가 국내 동물들의 삶을 개선해 나가는 전진기지가 되길 희망한다고 했다. 그는 “반려동물을 사지 않고 입양하는 게 당연시 되는 국내 반려문화의 기준을 더봄센터가 만들어 갈 것”이라며 “개체관리 프로그램을 통해 센터 동물들의 정보를 제대로 입양희망자에게 제공하면 입양이 더욱 늘 것”이라고 밝혔다.

이태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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