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 방 구하기· 도시개발 모의실험... '프롭테크'가 미래 바꾼다

입력
2020.11.21 04:30
12면

편집자주

※서민들에게 도시는 살기도(live), 사기도(buy) 어려운 곳이 되고 있습니다. 부동산은 치솟고 거주 양극화는 갈수록 심해집니다. 이런 불평등과 모순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요. 도시 전문가의 눈으로 도시를 둘러싼 여러 이슈를 하나씩 짚어보려 합니다. 주택과 부동산 정책, 도시계획을 전공한 김진유 경기대 교수가 <한국일보>에 3주에 한 번씩 연재합니다.



<12> 도시공간을 바꿀 수 있는 신기술, 프롭테크

도시는 언제나 그 시대의 최첨단 기술이 집약된 공간이었다. 증기기관이 발명된 것도 컴퓨터가 정보화시대를 연 것도 모두 도시의 한 귀퉁이였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많은 도시는 혁신을 통해 더 나은 공간을 만들기 위해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도시공간의 효율성을 좌우하는 도시 계획과 부동산 분야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도시계획은 몇몇 대가들의 경험과 감에 의지하는 경우가 적지 않고 부동산 산업에 대해선 투기 프레임을 거두지 않고 있다. 도시공간의 비효율을 방치하고도 지속가능한 발전을 할 수 있을지 회의적인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다.

시대를 앞서가지는 못할 지언정 뒤처지지는 말아야 하는데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프롭테크 분야는 도시공간을 바꾸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 좀 더 자세히 알아 보자.

공간과 기술의 만남, 프롭테크

프롭테크(Proptech)란 부동산(Property)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로 부동산분야에 최첨단 기술을 접목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분야를 뜻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공유숙박회사 에어비앤비, 글로벌 공유오피스 업체 위워크(WeWork), 부동산 정보업체 직방이 프롭테크기업이다.

이 회사들은 기존 부동산기업과 뭐가 다를까. 가장 쉽게 느낄 수 있는 차이는 부동산산업의 디지털화이다. 전화나 발품에 의지했던 부동산 탐색을 디지털화된 플랫폼에서 쉽고 편하게 하게 해준다. 가상현실(VR)을 통해 직접 가지 않고도 기본적으로 내부를 둘러볼 수 있으므로 시간과 비용을 크게 절약할 수 있다.

부산에서 서울로 대학을 진학한 새내기가 학교 앞에 방을 얻는 것을 생각해보자. 기존에는 직접 부동산을 일일이 방문해야 했지만 이제는 앱으로 다양한 요소를 비교하고 2~3개 물건에 대해 VR로 살펴본 후 어느 정도 확신이 들면 굳이 서울에 오지 않고도 계약을 할 수 있다.

프롭테크는 블록체인, 인공지능(AI), VR 등 최첨단 기술을 통해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있다. 미국의 한 회사는 증강현실(AR)에 기반해 건설현장의 360도 영상을 생성해 진도 예측을 지원한다. 시간 흐름에 따라 공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추적할 수 있고 설계대로 철근이 들어갔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시공에 대한 확인이나 감리의 근거자료가 명확하므로 신뢰도도 향상되고 필요한 서류도 감소하여 비용도 크게 절감할 수 있다. 국내 한 회사는 베트남에서 건설하는 주택 중 외국인 분양분을 VR기반 사이버 모델하우스를 통해 국내 투자자들에게 판매하고 있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기술을 활용해 부동산가치 자동산정(Automated Valuation Model) 서비스도 주목할만하다. 특히 국내의 경우 연립이나 다세대는 가격자료를 구하기 어려워 은행 담보대출 시 어려움을 겪는 소비자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

프롭테크와 스마트시티

프롭테크는 스마트시티와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디지털트윈(Digital Twin)이라는 기술은 실제공간과 가상공간을 연결해 가상공간에서 하는 행위가 실제 공간에 적용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 건설현장 포크레인을 우리나라 기술자가 디지털트윈을 통해 운전하며 작업을 할 수 있다. 싱가포르는 이 기술을 도시에 접목했다. 3D로 버츄얼 싱가포르를 구현한 후 새로운 건물이나 개발 시의 영향을 미리 시뮬레이션하면서 최적의 도시공간을 계획하는 것이다. 일례로 도시 건물의 옥상이 받는 일조량을 분석한 후 태양광 패널의 설치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프롭테크는 분명 토지이용에 영향을 미칠 것이고 결국 도시를 바꿀 것이다. 각 프롭테크 기업들은 새로운 공간가치를 찾아내면서 도시에서 버려졌던 공간들을 살려낼 것이다. 버추얼 싱가포르의 예처럼 사람의 눈으로 미처 발견하지 못한 자투리까지 찾아내 최적의 대안을 제시해줄 수 있다. 이미 빈 집을 빌려주고, 빈 주차공간을 안내하며, 주방을 공유하면서 방치되었던 공간을 우리에게 돌려주고 있다. 프롭테크기업이 없었더라면 빈 주차장을 찾아 헤매면서 매연을 더 많이 뿜었을 차들이 최적의 주차장을 찾아가니 교통소통과 공기질에 모두 도움이 되는 것이다.

프롭테크 기업에서 자연스럽게 쌓이는 빅데이터는 우리가 원하는 공간이 어떤 것이며 앞으로 도시가 어떻게 변해갈 것인지 말해줄 수도 것이다. 예를 들어 부동산앱에 쌓인 빅데이터를 통해 종로에서 젊은층들이 가장 많이 찾는 주택면적과 유형을 알아내고 그에 맞춰 공급한다면 그것이 바로 수요맞춤형 주택공급정책이 되는 것이다. 지금의 전세대란도 임대계약에 대한 빅데이터가 있다면 훨씬 빨리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다. 전세를 찾는 가구들과 전세매물, 빈집, 공공임대를 실시간으로 매칭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수적인 상생 전략과 개인정보보호

프롭테크가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려면 반드시 상생(win-win) 전략을 도모해야 한다. 프롭테크는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분야가 아니다. 기존의 부동산 산업에 뿌리를 두고 첨단 테크놀로지를 통해 한 수준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필연적으로 기존 산업과 경쟁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다. 타다와 택시업계의 대립이 가장 가까운 예이다. 소비자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떻게 파이를 키워서 공존할 수 있을 것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최근 자동시세산정 프롭테크 기업에 대해 기존 감정평가업계가 벌이고 있는 소송은 단적인 사례다. 이미 해외에서도 자동가치산정기술이 상용화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만 문제가 되는 이유는 제도적 환경이 달라서다. 해외와 달리 감정평가사는 국가가 배타적인 독점권을 인정해준 국가자격증이다. 공인중개사도 동일하다.

그러므로 이들과의 상생전략은 부동산가치산정이나 중개와 관련된 프롭테크기업에게는 첨단기술만큼이나 중요하다. 호주의 경우 국가가 부동산가치산정 기술의 상용화를 추진하지만 기존 평가사와도 역할을 분담하여 소비자와 공급자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마치 AI가 빅데이터를 이용해 다양한 분석을 하고 1차 진단을 하지만 최종적인 진단은 인간 의사가 하는 이치와 같다.

개인정보보호도 중요한 이슈다. 빅데이터는 필연적으로 개개인의 정보를 수집하게 된다. 누가 언제 어디에 방문하고, 어떤 것을 먹었으며, 누구를 만났는지 등등 마음만 먹는다면 빅데이터 소유자는 빅브라더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개인의 사생활과 인권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빅데이터의 효용을 극대화할 것인가가 또한 프롭테크 성공의 핵심이 될 것이다.

구글이 야심차게 추진하던 캐나다의 퀘이사이드(Quayside) 스마트시티 계획의 취소는 좋은 예이다.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도 원인이었지만 스마트시티를 위해 막대한 데이터를 수집하려던 계획이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혔던 것이 프로젝트 취소의 가장 결정적 원인으로 알려졌다.

민감한 자가 살아남는다

누군가는 초격차를 주장하지만 사실 최고 수준에 이르면 늘 박빙이다. 실력 차이가 마이크로미터일 때 승부를 가르는 것은 반응 속도와 민감성이다. 노키아가 왜 세계무대에서 사라졌는가 되새겨보자. 새로운 시대의 변화속도를 읽지 못하고 스마트폰으로의 전환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프롭테크의 세계적인 급성장의 불길은 코로나19로 더욱 활활 타오르고 있다. 기존의 아날로그식 부동산산업을 고집하다가 어느 순간 외국계 프롭테크 기업에게 우리시장을 송두리째 뺏길 수도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개인정보보호와 상생전략도 잊어서는 안된다. 결국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신속한 제도정비를 통해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우리나라 부동산산업을 한 차원 높일 기회를 잡는 것이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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