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영화 ‘시민 케인’ 안 본 사람에겐 재미없을 수 있음.
18일 극장에서 개봉했고 내달 4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되는 영화 ‘맹크’에는 이런 문구가 있어야 할 듯싶다. 미국 영화사상 최고의 걸작이라 꼽히는 ‘시민 케인’의 시나리오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다룬 영화라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몰라도 영화 ‘변호인’은 재미있게 볼 수 있지만, ‘맹크’는 조금 다르다. 어느 정도 배경 지식이나 관심이 있어야 온전히 즐길 수 있다.
이 영화는 ‘시민 케인’의 고통스런 탄생 과정에 대한 흥미로운 뒷이야기인 동시에 할리우드 황금기 영화에 대한 러브레터이기도 하다. 문제적 예술가의 몰락과 자기 구원, 창작자와 그를 후원하는 자본가의 어긋난 관계, 자본에 기생하는 연예 산업의 치부, 가짜 뉴스의 폐해까지. 다양하고 다층적인 주제를 복화술처럼 펼쳐 놓는다. 감독은 데이비드 핀처. ‘세븐’ ‘파이트클럽’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소셜 네트워크’ ‘나를 찾아줘’ 같은 영화로 평단과 관객에게 고루 사랑 받아 온 감독이다. 그 데이비드 핀처라 해서 대중적인 영화라 기대했다간 당황할 수 있다.
‘맹크’는 1940년대 할리우드에서 A급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했던 허먼 J. 맹키위츠를 말한다. 당시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 다섯 곳 중 최약체였던 RKO는 1939년 천재 연출가로 불리던 24살 신인감독 오슨 웰스에게 영화 제작 전권을 내준다. 이듬해 웰스는 라디오 드라마에서 함께 일했던 맹키위츠에게 시나리오 초고를 맡긴다.
영화는 교통사고로 거동이 불편해진 맹키위츠(게리 올드먼)가 '시민 케인' 초고를 쓰기 위해 외딴 시골로 거처를 옮기는 것으로 시작한다. 맹키위츠는 화려한 작가다. 기자 출신에 뉴욕에서 극작가, 드라마 비평가로 활동했다. 할리우드로 와서는 파라마운트, MGM 등에서 일했다. 한 해에만 십 수편의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했다. 소위 말하는 A급 작가였다. 하지만 지금은 술독에 빠진 작가. 웰스의 제안을 받은 맹키위츠는 한때 가까이 지냈던언론 재벌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찰스 댄스)를 떠올리며 ‘시민 케인’를 써나간다.
영화는 플래시백을 통해 현재와 과거를 오간다. 맹키위츠가 허스트를 미워하게 되는 과정, 알코올중독과 도박으로 재능을 탕진하다 인생 최대의 걸작을 쓰게 되는 과정을 찬찬히 보여준다. 가짜 뉴스로 여론을 조작하면서까지 보수 자본가에게 아부하는 할리우드의 어두운 면도 비춘다. 감독은 맹키위츠와 허스트, 허스트의 젊은 연인인 배우 매리언 데이비스의 관계뿐 아니라 그가 할리우드에서 겪은 다양한 경험이 총체적으로 '시민 케인'에 녹아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맹크’는 2003년 작고한 감독의 부친 잭 핀처가 생전에 써놓은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흑백을 고집하는 감독 때문에 20여년간 투자를 못 받다가 넷플릭스가 나서면서 빛을 보게 됐다.
핀처 감독은 화면 질감부터 조명, 음악, 프러덕션 디자인, 의상, 등장인물의 말투, 심지어 필름 릴 교체 부분을 알리는 동그라미 표시까지 고전 흑백영화를 고스란히 재현했다. 게리 올드먼은 더 말할 것도 없고, 매리언 데이비스 역의 어맨다 사이프리드 등 다른 배우들 역시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대로 돌아간 듯 명연기를 보여준다.
배경지식이 있으면 더 좋다. 허스트와 데이비스를 비롯해 MGM의 공동 창업자 루이스 메이어, 제작자 어빙 솔버그, 훗날 ‘이브의 모든 것’ ‘아가씨와 건달들’ ‘클레오파트라’ 등 숱한 히트작을 내는 감독으로 성장하게 되는 맹키위츠의 동생 조지프 등이 줄줄이 나온다. MGM이 만든 가짜뉴스로 1934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낙선한 사회주의 작가 업튼 싱클레어도 빠트릴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