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을 강타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국제사회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이 방역에 실패해 강대국ㆍ선진국으로서의 이미지가 훼손됐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전 세계적으로 특히 중동지역에서 분쟁 횟수가 감소했고 그 강도도 약화했다는 점이다. 다만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도 불구하고 서구 선진국들을 ‘실패한 국가’로 치부할 수 없고, 중동 긴장이 완전히 사라질 것으로 보는 이도 없다. 결국 국제사회의 근본은 바뀌지 않은 셈이다.
중동 분쟁지역의 진정한 변화를 가늠할 수 있는 올해의 사건은 ‘금수저’ 출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물리치고 시골뜨기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당선된 미 대선이다. 다른 나라들도 그렇듯 ‘분쟁의 항상성’을 보여 온 중동국가들도 새 미 행정부가 출범하기도 전에 바이든 당선인의 정책 설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對) 중동정책 기조는 아직 공식적으로 확인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세계ㆍ중동 차원의 국제구조 △기존 민주당 정부정책 △상원의원 7선(36년) 기간 및 대통령 후보 시기 당선인의 발언 △주요 요직으로 임명될 외교 참모들의 면면 등을 통해 차기 미 행정부의 중동외교 방향을 유추해 볼 수 있다.
미 대통령이 누가돼도 불변의 사실은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 구조다. 중국이 미국과 나란히 ‘주요 2개국(G2)’ 반열에 오르면서 심화하는 양국간 패권 다툼은 현재 그리고 앞으로 국제사회의 권력 지형을 만들 게 확실하다.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우월한 입장에서 관리’든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이든 시진핑(習近平) 중국 정부의 ‘일대일로’ 전략과 대립각을 세웠다. 미국이 주도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와 중국 중심의 상하이협력기구(SCO)도 또 다른 대립 구도를 이루고 있다.
이런 국제질서 구조는 중동지역에도 그대로 투사된다. 미국을 중심으로 서유럽 국가들과 이스라엘, 걸프협력회의(GCCㆍ사우디아라비아 등 이슬람 수니파 국가들)가 한 축이다. 다른 축은 중국과 러시아, 이란 등 이슬람 시아파국가들이다. 여기에는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무장정파인 헤즈볼라도 포함된다. 오바마ㆍ트럼프 행정부 가릴 것 없이 늘 유지되는 경쟁 구도다.
때문에 성격이 다른 두 전ㆍ현직 정부의 중동정책만큼은 일치하는 면이 적지 않다. 이란 확장 억제, 중동에서 대량살상무기 확산 및 이슬람 테러리즘 억지, 친(親)이스라엘 기조, 중동 석유에너지 통제 정책 등 얼개는 모두 비슷하고 세부 실행 방법에서만 다를 뿐이다. 바이든 당선인도 이 같은 방향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을 것 같다.
차이가 있다면 오바마 행정부는 이란 핵합의(JCPOAㆍ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앞세워 이란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면서도 동시에 이스라엘, 사우디 등 중동 동맹국들과 ‘거리두기’를 했고, 이라크ㆍ아프가니스탄에서는 ‘미군 철수’를 단행했다는 점이다. 자유주의적 국제주의 혹은 패권주의 외교 정책을 기본으로 삼았다. 반면 트럼프 행정부는 오바마 빼고 무엇이든 한다는 식의 일명 ‘ABO(Anything But Obamaㆍ오바마와 반대로 하기)’ 정책에 근거해 JCPOA에서 탈퇴했다. 현실주의적 패권주의, 신고립주의, 독불장군식 대외정책을 실행한 것이다.
그렇다면 온건주의자로 알려진 바이든 당선인의 중동정책은 어떤 틀로 짜여질까. 우선 안보 전문가들은 미중ㆍ미러간 경쟁 틀은 그대로 유지될 것으로 본다. 기존 민주당 행정부 핵심 정책인 민주주의와 인권, 자유의 가치를 중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동맹ㆍ우방국들과의 연대 강화를 바탕으로 글로벌 리더십을 회복한 뒤 국제규범과 다자간 협력을 무기 삼아 중국을 압박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엔 ‘ABT(Anything But Trumpㆍ트럼프와 반대로 하기)’ 전략을 구사할 가능성도 있다. 중국의 패권국 부상을 저지하는 측면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과 비슷하나 구체적 방식과 수사에서 차이를 둘 것이란 의미다. 바이든 당선인은 올해 3월 대선 후보 시절 미 외교매체 포린어페어 기고에서 “중국이 미국과 미 기업의 기술ㆍ지적 재산권을 계속 털어갈 우려가 높기 때문에 동맹 및 파트너와 공동전선을 구축해 막아내겠다”고 공언했다. “미국은 다시 지도국이 될 준비가 돼 있다”고도 했다. 해당 발언에 견줘 보면 트럼프 대통령과는 결이 다른 방식으로 중동에서 중국ㆍ러시아의 영향력을 견제할 것이란 분석이다.
바이든의 대외정책 및 대 중동정책이 온건해질 것이라는 주장에 의문을 표하는 견해도 있다. 대선 기간 바이든 후보의 자문단 중 콜린 칼, 앤토니 블링켄, 미셸 플루노이는 오바마 행정부에서 무인기(드론) 공격 프로그램이나 시리아ㆍ리비아 제재에 동의했던 인사들이다. 밀드레드 샌더스 교수는 “바이든이 중동에서 정권교체와 드론 공격, 전제군주 지지 정책을 멈출지는 불분명하다”며 “지금까지 파리기후변화협약 외에 당선인과 자문단 사이에 외교정책을 전환하겠다는 증거는 별로 없다”고 평했다. 1991년 상원의원 시절 바이든은 걸프전에 반대했지만, 유고슬라비아 내전, 2003년 이라크전 승인 결의안, 리비아 군사개입 지원 등 중동분쟁 개입에는 대체로 찬성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선거 기간 중 동맹 강화를 여러 차례 강조한 것과 달리 사우디와의 관계를 재평가하고, 이란 핵합의에 복귀하겠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에 대한 언급이 별로 없는 점으로 미뤄 중동 전략에서 이스라엘의 지정학적 위상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
바이든은 예멘ㆍ시리아 내전, 레바논ㆍ이라크 내분, 무장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 발호 등 수많은 중동 분쟁 상황에 관해 상세히 언급한 적도 없다. 9월 언론 인터뷰에서 트럼프의 대 이란 정책을 ‘위험한 실패(dangerous failure)’로 규정하면서 대서양동맹의 균열을 초래했다고 강하게 비판한 것이 전부다.
여러 정황을 종합해 보면 바이든 행정부의 중동정책 및 중동분쟁 입장은 ABT와 오바마 행정부로의 회귀라는 큰 갈래로 귀결될 것으로 판단된다. 이 틀 안에서 바이든 행정부만의 창조적 색깔을 찾아내려 할 수 있다. 특히 동맹, 국제기구, 민주주의, 인권이라는 가치를 기반으로 분쟁 사례별 개입 여부를 저울질할 것으로 예상된다. 가령 다자주의를 존중하는 외교 방식을 준용해 이란의 핵무기 개발 억제라는 전제 하에 이란 핵합의 재가입 또는 재협상을 진행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