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신공항 건립 계획이 사실상 백지화되면서 지난 14년 간 이어져온 ‘영남권 신공항’ 찾기 공방이 다시 불붙을 전망이다.
여당에선 이미 부산 가덕도 신공항 추진으로 방침을 굳혔지만, 이곳은 앞서 두 차례나 ‘부적합’ 판정을 받은 부지다.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는 "후속조치 방안을 조속히 마련하겠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 선거를 앞둔 정치권이 절차를 건너 뛴 채 일방적으로 가덕도를 밀어붙일 경우 막대한 분란이 일 것이란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총리실 김해신공항 검증위원회는 17일 △비행 안전성 확보에 막대한 예산 투입이 불가피하고 △천문학적 예산을 투입하고도 원하는 만큼의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등의 이유로 "김해신공항 확장은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정부와 여당은 사실상 가덕도 신공항 추진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검증위 결과 발표 직후 "이제 김해신공항 추진계획을 백지화하고, 새로운 동남권 공항을 건설해야 하는 국면으로 접어들었다"고 밝혔다. 정세균 국무총리도 검증위 발표 후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동남권 신공항 추진을 차질없이 추진할 것을 지시하며 보조를 맞췄다.
하지만 가덕도 신공항은 이미 여러 차례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2016년 정부가 프랑스 파리공한공단엔지니어링(ADPi)에 의뢰해 발표한 ‘영남권 신공항 사전타당성 용역’ 결과, 가덕도(활주로 1개)는 평균 635점으로 김해신공항(평균 818점)는 물론이고 경남 밀양(평균 665점 활주로 1개)보다도 낮은 점수를 받았다. 2011년 밀양과 가덕도 두 곳을 대상으로 한 평가 결과에서도 가덕도의 평점은 38.3으로 밀양(39.9)보다 낮았다. 두 차례나 공항 입지로는 가장 부적합하다는 평가를 받은 것이다.
가덕도의 최대 단점은 경제성이 낮다는 것이다. 가덕도 신공항 건설안은 2009년 국토연구원 조사에서 B/C(비용 대비 효용)이 0.7로 '경제성이 없다'고 판정이 난 바 있다. 100원을 투자하면 70원의 효과를 본다는 의미다.
2016년 용역에선 가덕도 신공항 건설에 7조4,734억원(활주로 1개) 혹은 10조2,014억원(활주로 2개)이 필요할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실제로 비용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본다. 김해신공항도 용역 결과는 4조1,657억원이 들 것으로 추산했으나 국토부가 지난해 3월 밝힌 소요 비용은 6조5,810억원으로 늘었다.
바다를 매립하는 만큼 환경에 미치는 영향도 부담으로 꼽힌다. 2016년 용역보고서를 보면 “산봉우리를 자르고 바다를 매립하다 보면 가덕도 지역 자연환경에 심대한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는 언급이 있다.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가덕도는 배후부지가 없어 대규모 매립이 불가피해 예산이 많이 들고 인접한 철새도래지 문화재 보호구역을 위협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여당이 '프리 패스'로 가덕도 신공항을 추진할 경우 논란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여권에선 다시 후보지를 물색하는 '원점 재검토' 대신 입법 등을 통해 가덕도 신공항 추진을 조기에 결론낼 태세다. 다시 입지 선정 작업부터 시작할 경우 상당한 예산과 시일이 소요되고 국론 분열이나 지역 갈등이 심화되는 부작용이 크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그동안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여 온 국토부는 정치권에서 고강도 압박을 거듭하면서 가덕도 신공항 추진에 나서는 방향으로 사실상 내부방침을 선회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토부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검증 결과를 겸허히 수용하며 향후 총리실 등 관계기관과 긴밀한 협의를 통해 후속조치 방안을 조속히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윤식 가톨릭관동대학교 항공운항과 교수는 “4년 전 결정을 뒤집은 판단과 별개로, 당시와는 항공산업 상황이 크게 달라진 것도 사실”이라며 “이번에는 국내 사정을 잘 아는 연구기관 등을 활용해 좀 더 심도 깊고 현실성 있는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