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코로나 사망률 왜 높나 봤더니…노인 환자는 사실상 포기?

입력
2020.11.18 04:30
벨기에, 전세계 코로나 사망 비율 최다
절반 이상이 요양원 노인 거주자 판정
병상 부족으로 중환자 57%만 병원 이송

벨기에 보건 당국이 감당이 어려울 만큼 폭증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 수용을 위해 요양시설 노인 환자의 입원을 사실상 포기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어차피 고령층은 바이러스에 취약해 치료 효과가 적다는 이유인데, 인권 침해 비판이 거세다. 복지국가마저 코로나19 확산 방지에 급급해 ‘노인돌봄’의 민낯을 드러낸 것이다.

AP통신은 16일(현지시간) 국제인권단체 엠네스티 보고서를 인용, “벨기에 당국이 코로나19 확산 기간 요양원의 노인 수천명을 버려뒀다”고 보도했다. 벨기에는 현재 확진자 대비 사망률이 세계 1위이고, 지난달까지 코로나19 사망자의 61.3%가 요양시설에서 발생했다. 문제는 요양원 수용자의 높은 사망률 이면에 ‘치료 포기’가 있었다는 점이다. 보고서에 공동 참여한 국제의료구호단체 국경없는의사회(MSF)에 따르면 코로나19 발병 이전 병원 이송 비율은 86%였지만, 현재는 중환자 57%만이 병원으로 옮겨진다. 사망자 다수(79%)가 요양원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고령자를 방치한 배경에는 태부족인 병상 실태가 자리잡고 있다. 벨기에 최대 요양병원연맹인 페마벨 측은 “모두가 이탈리아ㆍ스페인의 병상 부족 사태를 보고 놀랐다”며 “중환자 병상 확보가 최우선시 되면서 요양원은 후순위로 밀려났고 피해는 고스란히 노인들에게 돌아갔다”고 고백했다. 엠네스티 역시 “병원은 병상 확보를 위해 환자를 합법적으로 거부할 수 있다”면서도 “병원과 동일한 수준의 보호 조치가 요양원에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부의 미흡한 대처는 코로나19 사망 급증 외에도 시설 직원의 노동권, 건강 악화 등 여러 부작용을 낳고 있다. 단체 설문에 따르면 요양원 직원과 거주자 절반이 개인보호장비(PPE) 사용법과 바이러스의 위험성에 대한 설명을 충분히 듣지 못했다. 요양원 직원을 상대로 한 코로나19 진단검사는 8월부터 한 달마다 실시됐으나 당국은 그마저도 지난달 중단했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는 “벨기에 요양원 사망자 중 95%가 코로나19 ‘의심 사례’라는 사실은 환자가 코로나19 증상을 보였는데도 검사를 받지 못했다는 증거”라고 분석했다. 방역을 명목으로 요양원 직원 수를 줄이고 방문을 제한한 점도 건강에 악영향을 미쳤다. 보고서에는 폐쇄 조치 여파로 사회적 접촉이 아예 차단되면서 눈에 띄는 인지 저하 및 정신 질환을 보인 요양원 거주자도 나타났다고 적시돼 있다.

요양시설은 고령자가 밀집된 구조 탓에 코로나19 확산 초기부터 발병 고위험 대상으로 분류됐지만, 여전히 적절한 보호가 취해지지 않고 있다. 미 CNN방송은 “7, 8월 미 전역에서 매 분마다 한명 이상의 요양원 거주자가 감염되고 매 시간 11명의 거주자가 사망했다”며 걷잡을 수 없는 확산세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한스 클루게 세계보건기구(WHO) 유럽담당 국장은 “바이러스에 취약하다고 해서 회복 가능성까지 낮은 것은 아니다”라며 보건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장채원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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