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한동훈 검사장을 겨냥해 ‘피의자의 휴대전화 비밀번호 제공’을 강제하는 이른바 ‘한동훈 방지법’을 추진하는 데 대해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침해할 여지가 큰 데다, 인권을 강조하는 당의 정체성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이를 의식한 듯 추 장관도 '연구 과제'라며 한 발 물러섰다.
박성민 민주당 최고위원은 16일 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추 장관이 추진하는 법안에 대해 “조금 과한 측면이 있다”고 직격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대한민국에선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안 할 권리 자체가 전제돼 있다”며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푸는 것이 의무사항이 되면 별건 수사를 할 수 있는 위험까지도 생긴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해당 법안이 헌법이 보장하는 진술거부권과 피의자의 방어권을 정면으로 침해한다는 것이다.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도 일제히 신중론을 펼치고 나섰다. 박범계 의원은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쟁점은) 수사 필요성을 더 우선시하느냐, 개인 인권을 더 우선시하느냐 문제인데 민주당은 전통적으로 개인 인권을 우선시해왔다”며 “(추 장관 주장이) 국민적 공감대, 특히 당 지지자들의 공감대를 얻기엔 아직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 2016년 민주당은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테러방지법’에 대해 “국민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192시간이 넘는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벌이며 반대한 바 있다.
법사위 민주당 간사인 백혜련 의원도 “(n번방 사건 등) 디지털 기기를 이용한 고도화된 범죄에 대응하기 위한 입법 노력은 필요하지만 헌법상 자기부죄를 거부하는 부분과 충돌하기에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동훈 검사장 사건은 정치 쟁점화돼 (추 장관이) 그 사건을 얘기하는 순간 문제가 될 수 있었다”고 했다. 해당 법안이 채널A 사건 수사로 휴대전화를 압수당한 뒤 비밀번호를 제공하지 않는 한동훈 검사장을 겨냥한 ‘보복 입법’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것이다.
추 장관이 지난 12일 ‘비밀번호 자백법’ 추진 계획을 밝힌 후 민주당은 그간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민주 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과 참여연대가 잇따라 추 장관을 규탄하는 성명을 내는 등 진보 진영 내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자 해당 법안에 선을 긋고 나선 것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당론으로 추진할 계획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논란이 커지자 추 장관도 멈칫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이날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관련 질의에 “아직 법안 제출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며 "디지털 시대에 대비한 ‘디지털 로(Law)’를 연구해야 하지 않느냐”며 연구 단계라는 취지로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