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중국해는 중국이 '대륙의 호수'로 부르며 영유권을 주장하는 곳이다. 반면 미국은 중국의 입김을 차단하려 '항행의 자유' 작전으로 맞서 왔다. 이처럼 민감한 곳에 중국이 방공식별구역(ADIZ)을 선포할 것이라는 관측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미국 정권 교체기를 맞아 전략적 요충지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양국의 신경전이 가열되는 양상이다.
중국은 2013년 동중국해에 일방적으로 ADIZ를 선포해 한국과 마찰을 빚었다. 이어도 상공에서 양국 ADIZ가 겹치기 때문이다. ADIZ는 접근하는 다른 나라 군용기를 조기에 포착하기 위해 하늘에 그은 가상의 선으로 유사시 전투기가 대응 출격하는 것이 통례다. ADIZ는 국제법상 인정된 영공은 아니지만, 반대로 어떠한 규율도 받지 않는 회색지대다. 지난해 중국 군용기는 150여회(합참 자료 기준) 한국 ADIZ에 진입했다.
중국 국방부는 7년 전 동중국해에 ADIZ를 설정하면서 "적절한 시기에 다른 곳에도 선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남중국해가 다음 차례로 유력하게 거론돼 왔다. 대만 국방부는 지난 6월 "중국이 남중국해에 ADIZ를 선포할 것"이라고 이례적으로 공식 확인하기도 했다.
올해 대만 서남부 상공을 통해 ADIZ에 진입한 대잠초계기 등 중국 군용기는 276대에 달한다. 9월 16일 이후로만 87대(31%)다. 도발 강도를 높여가고 있는 것이다. 미 외교전문지 디플로맷은 16일 "이 곳 해저지형은 잠수함 매복에 유리해 대만해협을 봉쇄하기 위한 길목이기도 하다"면서 "중국이 ADIZ를 겹치게 선포해 군용기를 띄우면 대만군의 움직임을 파악하는데 용이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홍콩 관제국은 지난달 프라타스군도로 향하던 대만 민항기를 돌려세우기도 했다. 프라타스군도는 대만이 실효 지배하는 섬으로, 중국 하이난과 대만의 중간에 위치해 있다. 중국이 ADIZ를 선포한다면 이어도와 유사하게 중국 측 공역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은 곳이다.
ADIZ를 선포할 경우 군사력의 뒷받침이 중요하다. 중국이 연말까지 남중국해에 떠다니는(부유식) 원자력발전소 20기를 설치하려는 이유다. 항공기 부식을 방지하기 위한 바닷물 담수화에 필수적인 시설이다. 또 인공암초에 공중조기경보통제기와 대잠초계기를 배치하고 레이더를 설치하는 등 남중국해 장악 의지를 노골화하고 있다.
중국이 준비 작업에 돌입한 듯하지만 ADIZ 선포에 따른 위험은 여전하다. 미국은 남중국해 항행 자유 작전을 2015~17년 매년 4회에서 2018년 6회, 지난해와 올해는 각각 8회로 계속 늘리고 있다. 미국이 계속 존재감을 과시할 경우 중국의 ADIZ는 허울에 그칠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트럼프 행정부와 달리 작전 횟수를 줄일 것이란 기대가 없는 건 아니지만 선제적인 행동은 부담일 수밖에 없다.
동남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과의 관계도 고민 지점이다. 동중국해 ADIZ는 상대가 한국과 일본에 불과했지만, 남중국해에는 베트남·말레이시아·필리핀 등 6개국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체결 등 아세안에 공을 들이는 들이는 상황도 감안해야 한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이 고립으로 내몰리는 위험을 감수하지는 않겠지만 팽창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할 지는 알 수 없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