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를 연습하던 어느 날 밤의 술자리였을 것이다. 배우 김주호는 소주를 마시다 울었다. 서울에 와서 배우를 시작한 지 아주 오래, 처음으로 자신의 얼굴이 새겨진 포스터가 대학로 곳곳에 붙어 있는 풍경을 보았다고 했다. 난 그의 얼굴이 앞으로도 오래오래 붙어있을 거라 했고, 그 말은 현실이 됐다. 나와 김주호는 모든 것이 다르다. 성격, 취향, 살아온 길. 그럼에도 내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그는 늘 ‘모르는 길을 가려고’ 한다. 자신이 어떤 배우인지, 무엇을 잘하는지 확실히 알고 있지만, 늘 자신과 다른 자신을, 해 보지 못한 무언가를 찾고 싶어서 모르는 길로 떠난다. 그의 태도는 창작자에게 큰 힘을 준다.
창작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고, 가 보지 못했던 길을 떠나는 것이다. 그 길의 끝에 다다를 수 있을 거란 예감만 있을 뿐, 실제로 길을 떠나는 것은 배우다. 김주호는 그 길을 늘 앞장서서 걷는다. 아무리 걸어도 모르겠으면 뛰고, 구르고, 춤추고, 소리치고, 절규하고, 몸부림친다. 그렇게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 본 후에 내뱉는 한마디는 둘 중 하나다. “되겠는데.” 혹은 “미안, 힘들겠어.”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에서 아버지 표도르가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 노래를 부를 때, 난 또 모르는 길에 대해 횡설수설했다. “형, 표도르가 춤을 춰야 할 것 같아요. 춤인지 몸부림인지, 신명인지 분노인지, 잔치인지 장례인지, 웃음인지 눈물인지 모르겠는 그런 춤이어야 할 것 같아요. 근데 저도 모르겠어요. 이게 될까요?” 김주호는 한참을 생각하다 말했다. “나도 모르겠는데, 해 보고 싶어. 며칠만 기다려 줘.” 며칠 후 연습에서 그는 정말로 그런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 춤을 보는데 두근거리다 못해 눈물이 났다. 달려가 껴안으며 외쳤다. “형! 이거예요! 대체 어디서 영감을 받으신 거예요?” “짐 모리슨.”
그는 늘 책을 읽는다. 함께 술자리를 하면 대화가 동서고금을 넘나든다. 선과 악, 의식과 무의식, 정치와 종교, 지구와 우주, 그는 늘 대본 너머의 것을 읽고 싶어하고, 연기 너머의 감정을 느끼고 싶어하며, 생각 너머의 철학을 찾고 싶어한다. 표도르 배역을 맡았을 때, 그는 원작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여러 번역본으로 비교해 가며 읽는 동시에, 관련 논문, 기사, 연구서, 영감을 받아 만든 시, 음악, 그림을 샅샅이 찾았다. 그렇게 무언가를 채우고 나타난 그날의 연습은 끝없는 생기가 돌았다. 그 생기는 곧 모두에게 전염됐다. 모두가 무언가를 찾아 밤을 새는 날이 늘어났고, 연습실은 생기를 넘어 생동했다.
공연을 시작한 지 15년이 넘었다. 대부분 창작이었다. 아는 길이 하나씩 생길 때마다, 모르는 길이 하나씩 발견된다. 아는 길이 많아질수록, 모르는 길은 더 험난해진다. 산등성이까지 올라본 경험이, 자꾸만 높은 봉우리를 꿈꾸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 봉우리에 닿을 수 있을지 아직은 모른다. 닿을 수 있다 해도 몇 년의 세월이 걸릴지 아직 모른다. 나는 여전히 모를 것이고, 여전히 김주호를 의지할 것이다. 그럼 그는 또 한 번, 모르는 길을 뚜벅뚜벅 떠날 것이다. “무대에서는 모든 것이 언어가 될 수 있나 봐. 말하는 것도 언어, 말하지 않는 것도 언어, 행동도 언어, 행동하지 않는 것도 언어, 노래하는 것도 언어, 노래를 듣는 것도 언어, 조명 속에 있는 것도 언어, 조명 바깥에 있는 것도 언어, 이걸 아는데 참 오래 걸렸어.” 배우 김주호는 아마도 계속해서 모를 것이고, 계속해서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