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70시간씩 고강도·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택배기사의 과로를 막기 위해, 정부가 근로시간을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개인사업자인 택배기사는 주 최대 52시간이라는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않아 장시간 노동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택배 한 건당 800원 수준인 배송 수수료를 현실화하는 방안도 모색한다.
고용노동부와 국토교통부는 1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이러한 내용의 '택배기사 과로방지 대책'을 발표했다. 택배기사는 법적 신분이 개인사업자인 특수고용직(특고) 종사자로서, 과로 역시 개인의 문제로 치부돼 왔다. 그러나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비대면 소비가 폭증, 과로에 시달리던 택배기사 10명이 사망하면서 정부가 개입해 택배업계의 작업 환경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됐다. 올해 택배시장은 전년 대비 14.3% 성장, 7조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정부는 관측하고 있다.
정부는 이번 대책에서 택배기사의 근로시간을 단축하는데 중점을 뒀다. △택배사별 1일 최대 작업시간 설정 △심야배송 금지 △주 5일제가 핵심이다. 정부가 택배기사의 작업 환경 실태조사 결과와 직무 분석을 통해 적정 작업 시간을 제시하면, 택배회사는 이를 기준으로 자사 여건에 맞춰 1일 작업시간을 정해 준수하게 할 방침이다.
신선식품을 제외한 상품은 오후 10시 이후 심야배송이 금지된다. 이 시간 이후에는 업무용 스마트폰 앱을 아예 차단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정부가 내년 상반기 안에 마련할 택배기사의 표준계약서에는 이로 인한 지연 배송을 이유로 계약 갱신을 거절하는 등 부당한 처우를 금지하는 내용이 포함된다. 택배회사들이 당일배송율을 기준으로 각 대리점을 평가하다 보니, 택배기사들도 이를 높이기 위해 밤 늦게까지 배송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택배기사의 주 5일제 확산을 유도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택배기사는 통상 일요일과 공휴일을 제외한 주 6일 일한다. 백승근 국토부 교통물류실장은 "주 5일제는 배송 시스템 효율화, 분류 인력 투입 등과 맞물려 이뤄져야 한다"며 "이를 종합해 추후 구성되는 사회적 논의기구에서 구체적인 시행 방안을 도출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갈수록 떨어지는 택배가격도 현실화 방안을 논의할 전망이다. 택배사간 가격 경쟁이 심해지면서 최근 20년간 택배가격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2002년 3,265원이었던 택배 가격은 2010년 2,505원, 2019년 2,269원으로 떨어졌다. 이는 택배기사에게 지급되는 배송 수수료를 낮췄고, 택배기사는 소득을 유지하기 위해 무리해서 더 많은 배송을 하게 되는 구조로 이어졌다. 2,200원의 택배비 중 현재 택배기사가 가져가는 배송 수수료는 800원에 그친다.
택배기사의 배송 수수료 저하를 야기하는 또 다른 원인인 '백마진 관행'도 근절한다는 계획이다. 소비자가 부담하는 2,200원의 택배비 가운데, 많은 택배사가 600원 정도를 온라인 쇼핑몰이나 홈쇼핑 등 화주에게 지불하는 것으로 정부는 파악하고 있다. 택배사가 화주에게 지급하는 일종의 리베이트다.
택배기사 과로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된, '분류작업'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노사 입장차가 워낙 큰 탓이다. 택배기사 측은 1일 평균 작업시간 12시간10분 중 분류작업만 3, 4시간을 차지한다며 분류 업무가 '공짜노동'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택배회사는 분류 업무도 배송 업무에 포함, 배송 수수료에 분류 수당도 포함돼 있다고 맞서고 있다. 정부는 내년 상반기까지 적정 작업시간, 심야배송 제한, 분류 업무의 정의 등을 명시한 택배기사 표준계약서를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노동계에서는 그러나 정부 대책이 택배기사를 과로로부터 보호하기에는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비판했다. 한국노총은 이날 성명을 내고 "택배회사별로 작업시간을 줄일 여력이 없는 경우 현 체제를 그대로 유지할 가능성이 있다"며 "심야배송 제한 권고, 주 5일제 근무 확산 유도 등의 모호한 대책으로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과로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분류작업에 대해서도 분류작업 인력의 즉각적인 투입과 같은 명확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도 입장문에서 "심야배송 금지는 일부 긍정적으로 볼 수 있지만 노동부 장관이 밤 10시까지 일하는 것에 대해 적정 작업시간이라고 언급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한 처사"라며 "분류작업과 관련해서도 이미 택배회사들이 분류작업 인력을 투입함으로써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고 택배노동자의 업무가 아님을 스스로 밝힌 현실을 반영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