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 10일 의미 있는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국민 10명 중 8명은 택배 종사자의 처우개선을 위해서라면 배송 지연을 감수하겠다고 답했다.
조금 늦더라도 안전이 먼저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도 사재기 없는 대한민국을 만든 'K-배송' 신화가 전적으로 택배노동자들의 땀과 눈물 덕분이었다는 것을, 열다섯 분의 안타까운 희생을 통해 깨닫게 된 것이다.
지난 20년간 택배 물동량은 연평균 13%씩 증가했다. 작년 한해 택배노동자들이 배송한 택배는 총 28억개, 올해는 코로나19로 물동량이 전년 대비 20%나 늘어 30억개를 넘어설 전망이다. 2018년 서울노동권익센터 실태조사에 따르면 택배기사는 평상 시 하루 253개, 성수기 378개 택배를 처리한다고 한다. 2분당 1개꼴이다.
그러나 물량이 수입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택배 사간 경쟁으로 택배 단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했기 때문이다. 2002년 3,265원하던 단가는 2019년 2,269원이 됐다. 이 돈을 택배회사, 쇼핑몰 유통업체, 대리점, 택배기사가 나누다 보니 건당 배송 수수료도 30%이상 낮아졌다. 택배기사는 일정 수입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물량을 감당해야 한다.
택배사-영업점-택배기사에 이르는 복잡한 관계 속에서 위약금 요구와 같은 불공정 계약이 체결되기도 한다. 산재보험 가입률은 20% 미만이라 사회로부터 최소한의 보호도 받기 어렵다. 배송지 근처에 있던 택배분류장이 도시 외곽으로 밀려나는 것도 문제다. 먼 거리를 오가야 하기 때문에 휴식시간이 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처럼 얽히고설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혹독한 노동에 의존하는 허약한 산업체질을 개선해야 한다. 낙후된 물류센터와 물류설비 등을 현대화해 노동 부담을 줄이고, 안전한 노동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현재 국회 계류 중인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 제정이 무엇보다 시급한 이유다. 적정 작업시간 규정과 부당대우를 예방할 수 있는 표준계약서, 산재보험 등 종사자 보호를 위한 사회안전망 확충, 택배 인프라와 자동화 설비 지원 등의 근거가 담겨 있다.
아마존을 비롯해 글로벌 유통물류기업들은 4차 산업 기술을 기반으로 한 안전하고 효율적인 스마트물류 시스템으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생활물류법이 과로사 문제를 한번에 해결할 수는 없지만 퇴보하는 노동의 권리와 K-물류 성장을 견인할 출발점이 되어줄 것이다.
우리는 매번 ‘고객님 현관 앞에 택배가 배송되었습니다’라는 문자를 받는다. 이제는 우리 사회가 ‘택배기사님께 안전하게 노동할 권리가 배송되었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낼 차례다. 골목에서, 아파트 계단에서 무거운 삶의 짐을 나르고 있는 우리의 이웃을 위해 생활물류법이 연내 국회 문턱을 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