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아이돌 그룹 NCT U의 정규 2집 타이틀곡 '메이크 어 위시(Make A Wish)' 뮤직비디오가 공개되자 설전이 시작됐다. 멤버 루카스의 '드레드 헤어'가 문제가 된 것. 레게음악의 전설 밥 말리로 인해 널리 알려졌기에 '레게 머리'라고도 불리는 드레드 헤어란, 머리카락을 길게 길러 이를 여러 갈래로 땋아 넘긴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고유 머리 스타일을 말한다.
이 루카스의 드레드 헤어를 두고 해외팬들 사이에서 "흑인 문화를 도용했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 NCT U 뿐만이 아니다. 그 이전 방탄소년단, 엑소 등 수많은 아이돌들 또한 드레드 헤어 때문에 논란이 됐다.
18일 대중음악계에 따르면 K팝이 글로벌화되면서 이른바 '문화 도용(Cultural Appropriation)' 논란도 확산세다. 문화 도용은 쉽게 말해 다른 나라의 역사 사회 문화적 상징인 무엇을 맥락과 무관하게 가져다 쓴다는 비판이다. 대개 주류 문화에서 비주류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도 않은 채 그저 멋있다, 이채롭다, 특이하다는 등의 이유로 가져다 쓸 때 발생하는 문제다.
한국의 대중가요가 국내에서만 소비될 때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K팝으로 해외에서 광범위한 인기를 얻게 되면서 해외 팬들이 먼저 나서서 지적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NCT U 논란만 해도 심각한 감정 싸움으로 번졌다. NCT 해외 팬임을 자처하는 이들은 트위터를 통해 "오랫동안 이 문제에 대해 K팝 아이돌들을 가르쳐 왔지만 책임을 지거나 사과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쏟아냈다. 이는 또 다른 싸움을 낳았다. 입장문에 담긴 '가르치다(educate)'라는 표현이 국내 팬들의 심기를 거스른 것. 국내 팬들은 해외 팬들의 가르치려는 듯한 태도를 문제 삼았다. "아시아인에 대한 해외 팬들의 우월적 태도가 담겼다"거나 "흑인이 아닌 사람은 그러면 드레드 헤어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냐"는 반론이 줄이었다.
문화와 인종을 둘러싼 갈등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앞서 블랙핑크도 비슷한 일로 곤욕을 치렀다. 지난 6월 내놓은 '하우 유 라이크 댓(How You Like That)' 뮤직비디오에서 힌두교 신 가네샤의 이미지가 등장한 것 때문이다. 가네샤는 지혜와 행운을 상징하는 신으로 인도에서 무척 인기 있는 신이다. 인도의 K팝 팬들은 신성한 종교적 이미지가 더럽혀졌다고 비판하고 나섰고, YG엔터테인먼트 측은 이 이미지를 뮤직비디오에서 지우고 사과문까지 내놨다.
'화이트 워싱' 논란도 있다. 이 말은 원래 할리우드에서 비(非)백인의 역할을 백인 배우로 대체하는 것을 뜻했다. 하지만 K팝 쪽에서는 아이돌 그룹 멤버의 피부를 지나치게 하얗게 만드는 관행을 비판하는 말로 쓰인다. 해외 팬들은 "지나치게 희다"며 어둡게 피부색을 고치고, 국내 팬들은 "아시아 사람의 피부가 노란 것만은 아니다"며 반박하는 식이다. 국내 팬과 해외 팬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짐에 따라 일부 국내 팬들은 해외 팬을 아예 바퀴벌레에 빗대 '외퀴'라는 경멸적 단어를 쓰기도 한다.
이 같은 논란은 K팝이 전세계 다양한 문화권으로 확장해나가면서 피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 위상이 글로벌화되면서 문제도 글로벌화되는 측면이 있다. 여기다 세계 무대를 겨냥한 K팝은 그 자체가 애초부터 강한 혼종성을 띄고 있다. K팝으로서는 더 전진하기 위해서라도 이 갈등을 관리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다른 문화 스타일을 차용할 때 의도와 맥락을 살피는 게 우선이라 강조했다. 이동연 한예종 전통예술원 교수는 "드레드 헤어만 해도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 역사에서 유래했다"며 "이를 조롱하는 스타일 차용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이미 레게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으니 문화적 다양성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다"고 말했다. 어떤 스타일을 가져올 때 이것이 혹시 차별적인 것으로 인식될 가능성은 없는지 면밀히 따져야 한다는 얘기다.
다양한 문화에 대한 이해와 존중도 요구된다. 이규탁 한국조지메이슨대 교양학부 교수는 "혼종성의 정수인 K팝이 정체하지 않고 계속 발전하려면 다른 문화에 대한 열린 태도가 필수적"이라며 "다양한 문화를 수용하면서 K팝 만의 정체성으로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