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입력
2020.11.13 04:30
19면

편집자주

어린이 책은 결코 유치하지 않습니다. ‘꿈꿔본다, 어린이’는 아이만큼이나 어른도 함께 읽으면 더 좋을 어린이 책을 소개합니다. 미디어리터러시 운동을 펼치고 있는 박유신 서울 석관초등학교 교사가 '한국일보'에 4주마다 금요일에 글을 씁니다.


요즈음 재미있게 보는 드라마 ‘스타트 업’에서는 재미있는 인물 아니 사물이 등장한다. ‘영실이’ 라는 인공지능인데, 과학자 장영실의 이름을 딴 인공지능 스피커로서, 적당히 모자란 듯 ‘스마트’하게, 주인공의 말동무가 되어준다. SF영화 ‘Her’에서는 이미 인공지능과 주인공이 사랑에 빠진 적이 있고, 인류는 수많은 영화들에서 인공지능에 의해 수 차례 절멸의 위협을 받은 적이 있지만, TV 드라마에서 인공지능 캐릭터를 만나고 보니, 이미 인공지능은 우리 삶의 일부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요즈음 초등학생들은 궁금한 것이 있을 때 유튜브를 검색하고, 그리고 인공지능 스피커에게 질문을 한다고 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AI, 그리고 로봇과 관련하여 가진 교육적 관심은 많은 부분 진로교육에 집중되어 있는 듯 하다. 로봇이 일자리를 대체할 미래, 우리 아이들은 어떤 학습을 해야 미래에 살아남을 수 있을까. (직업을 가질 수 있을까) 미래의 AI 개발 공학자를 위한 코딩과 수학교육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기술적, 그리고 직업적 차원을 넘어, 로봇에 대한 보다 근본적이고 포괄적인 이야기를 아이들과 나눌 필요가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로봇이란 인류가 먼 옛날부터 꾸준히 상상하고 그려왔던, 인간을 닮은 피조물을 만들고자 했던 인간의 욕망의 역사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항상 그 시대의 상상력과 기술 안에서 로봇을 만들어 왔다. 로봇은 항상 존재해 왔으며, 현재에도 다양한 형태로 인간의 일을 대신하고 있다. 미래의 아이들은 로봇과 소통하고, 협업하며, 정서적 교감까지도 나누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포스트휴머니즘, 즉 인간의 현재 의미에 한정하지 않는 세계의 구성원에 대한 관점을 담은 철학에 기반한 교육이 필요한 시기이다. 그리고 그것은 막연한 상상력이나 과학기술에 대한 환상이나 두려움이 전부가 아닌, 로봇과 과학기술, 인문학에 대한 지식과 성찰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로봇: 인공지능 시대, 로봇과 친구가 되는 법’은 로봇과 관련하여 우리가 알아두면 좋을 과학기술 및 인문학적 지식과 예상 가능한 질문에 대한 답변들, 그리고 현재 아이들, 그리고 어른들 또한 생각해 보아야 할 포스트휴머니즘 철학에 기반한 성찰을 담고 있는 책이다. 다양한 관점의 읽을거리와 위트 있는 일러스트로 가득하다. 아이들과 함께 읽으면서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텍스트라고 생각된다. 2016년 라가치상 수상이 온 마음으로 납득되는 깊이 있는, 그리고 아름다운 책이다.



‘로봇’의 매력은 로봇에 대한 어린이 독자들이 로봇과 사회, 문화를 연결시켜 생각할 수 있는 다양한 생각의 지점을 마련한다는 점일 것이다. 로봇의 역사 이야기는 인공 생명을 만들고자 하는 꿈에서 시작된다. 독자는 그리스 신화, 히브리 신화의 골렘, 연금술 속의 호문쿨루스와 같은 이야기 속 인간의 상상력을 연결하고, 오토마타와 천공 카드의 발명과 같은 근대 과학기술의 기계 기술을 거쳐 어떻게 컴퓨터와 로봇 공학이 발전하였는지를 과학기술사를 통해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로봇과 노동의 문제는 20세기 공장에서 출발한다. 테일러리즘, 즉 시간과 노동에 대한 과학적 관리법, 즉 일의 과정을 기본적인 동작으로 나누고 시간을 재는 등 효율적인 작업 방식에 대한 연구가 로봇화의 길을 열었으며, 이것은 인간을 로봇으로 만드는 것이었다는 지적은 공장뿐 아니라 20세기 문명을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다.



'인간과 기계의 결합’, 즉 트랜스휴먼에 대한 소개, 로봇은 예술을 할 수 있는가, 로봇의 정서-돌봄노동 등 다양한 주제들이 깊이 있게, 그러나 알기 쉽게 다루어져 있다. 그리고 점점 인간에 가깝게 변해가는 이 매력적인 기계들에 대한 현재의 두려움과 미래의 전망에 대한 전문가 관점의 친절한 설명으로 로봇에 대한 긴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인공 생명에 대한 종교적 관점, 노동의 변화와 기본 소득에 대한 설명, 아시모프의 로봇 공학의 3원칙과 로봇 윤리에 이르기까지 어린이를 위한 책이지만, 결코 얕거나 가볍지 않은, 포스트휴머니즘에서 중요하게 논의되는 지식과 질문, 전문가의 답변들이 제시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과학자, 정책결정자, 시민을 호명하며, 우리가 로봇에게 어떤 임무를 맡길지 정해두어야 한다는 당부는 매우 감동적이다. 로봇 혁명의 시대는 시민사회의 모든 주체가 책임의식을 가지고 지금부터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박유신 서울 석관초등학교 교사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