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활비 논란의 본질

입력
2020.11.11 18: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기획재정부의 ‘예산 및 기금 운용 계획 집행지침’은 특수활동비를 ‘기밀 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및 사건 수사, 기타 이에 준하는 외교ᆞ안보, 경호 등 국정 수행 활동’에 사용토록 명시하고 있다. 언뜻 기밀 유지와 ‘암행성’이 요구되는 활동에만 쓰일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국정 수행 활동’을 구실로 기관장의 격려, 식사나 회식 등도 광의의 국정 수행에 필요한 활동이라며 특활비 사용을 용인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심지어 현금 사용은 ‘자제’만 하면 되고, 영수증 첨부도 의무사항이 아니다.

□ 게다가 특활비 지급 대상과 방법은 기관장이 해당 업무 특성을 감안해 결정ᆞ집행하게 돼 있다. 이처럼 특활비는 기관장이 누구에게 얼마를 지급할지 임의로 정할 수 있어서 권력기관 고위직 인사들의 ‘주머니 속 쌈짓돈’으로 불린다. 국민 세금을, 증빙 서류도 없이, 선심 쓰듯 쓸 수 있다 보니 논란의 대상이 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특활비 착복 범죄는 물론 2009년과 2011년 검찰총장의 돈봉투 지급, 2017년 법무부ᆞ검찰 간부 돈봉투 만찬, 국정원 특활비 상납 등 헤아리기 어렵다.

□ 운용의 불투명성에 대한 비판 때문에 특활비 규모는 해마다 줄고 있다. 2016년 8,870억원에 달하던 특활비 예산은 현 정부 들어 40%가량 감소했다고 한다. 하지만 특활비 운용의 투명성 확보는 여전히 난망하다. 국회가 2018년 특활비를 없애는 대신 업무추진비를 늘린 데서 보듯 특활비의 ‘쌈짓돈’ 마성에 중독된 공직사회의 도덕 불감증을 타파하려면 어떤 식으로든 운용 기준과 용도를 명확히 하고 감사나 검증을 받는 게 필요하다.

□ 윤석열 총장을 겨냥한 여당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공세로 불거진 특활비 논란은 이 같은 문제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법무부ᆞ검찰에 대한 여야의 검증 시도도 무력화시킬 만큼 특활비가 구축한 성곽은 견고하다. 법무부ᆞ검찰 등 특활비를 받는 모든 기관이 혈세를 허투루 쓰지 않게 하려면 여야가 입법적으로 접근하는 수밖에 없다. 가능한 범위에서 ‘국정 수행 활동’을 명확히 규정해 염치를 회복하고, 국회의 열람 검증이라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국민에 대한 여야의 도리다.

황상진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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