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유령이 수도권을 떠돌고 있다. '쓰레기 대란'이라는 유령이. "쓰레기장을 안방에 품느라 30년 동안 고통받았다"라며 독립을 외치고 있는 쪽과 "대안이 없지 않느냐"라며 버티는 쪽. 수도권 쓰레기 매립지를 둘러싼 갈등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12일 인천시가 '수도권 매립지 2025년 종료'를 또 다시 천명하며 영흥도를 자체 매립지 후보로 발표했다. '쓰레기를 발생시킨 곳이 처리까지 부담해야 한다'는 발생지 처리 원칙을 강조하며 서울과 경기도 역시 예외가 될 수 없다고 했다.
인천시는 "수도권 2,500만의 쓰레기를 떠안은 '쓰레기 도시' 이미지에서 벗어나겠다"라며 독자 노선을 공식화했다. 이날 발표로 대체 부지 마련에 미온적인 서울시와 경기도를 향해 공동 조성의 희망을 버리고 어서 쓰레기 대책을 마련하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시설이지만 늘 외면 받아야 했던 시설. 매립지를 둘러싸고 되풀이 되는 갈등은 어디서 왔고 어디로 향해가는지 '쓰레기 대란'의 역사를 짚어봤다.
매립은 가장 대표적이면서도 손쉬운 폐기물 처리법이다. 서울시에서 본격적으로 쓰레기를 땅에 묻기시작한 건 1964년이다. 그 이전에는 마땅한 폐기물 처리장이 없어 '아무데나' 적당히 묻었다. 택지 조성지, 저습지 등이 악취로 들끓었다.
1964년부터는 서울시에서 전용 매립지를 확보해 군자동, 상월곡동, 응암동, 염창동 등이 매립지로 활용됐다. 1976~1977년까지는 방배동, 압구정동, 장안동, 구의동, 청담동, 송정동 등이 매립지로 쓰였다. 이 지역들은 대부분 196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주변에 논과 밭이 주를 이뤘던 곳이었다.
그 사이 서울시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1955년 156만명이던 서울시 인구는 1978년 782만명이 됐다. 압구정동, 잠실, 상계동, 구의동 등 쓰레기 매립지였던 곳이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쓰레기 매립지를 한 곳으로 통일하자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됐다.
대규모 쓰레기 매립지 후보지를 물색하던 서울시는 서울 상암동에 위치한 난지도를 점찍었다. 서울의 외곽이면서도 교통이 편리했고 제방축조 공사가 진행중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동네'에서 최대한 멀리 쓰레기를 내다버리기에 최적인 장소였다. 1978년 3월부터 난지도에 서울과 경기 일부 지역에서 배출되는 쓰레기가 매립되기 시작했다.
한강변에 있으면서 사계절 꽃이 피던 섬, 철따라 온갖 난초와 꽃들이 만발해 '꽃섬'이라고 불리던 난지도는 순식간에 불모의 땅으로 변해갔다. 서울의 급속한 팽창과 도시화의 부작용으로 날마다 트럭들이 줄을 지어 드나들며 온갖 쓰레기들을 놓고 갔다. 환경부 환경통계포털 자료에 따르면, 국민 1인당 평균 내다버리는 쓰레기의 양이 1985년에 1.95㎏였다. 이는 1988년 2.17㎏, 1991년 2.30㎏로 가파르게 늘어났다.
서울시에 따르면, 이 때 하루 평균 8톤 트럭 3,000대 분량의 쓰레기가 난지도에 버려졌다고 한다. 1993년 3월 난지도가 포화 상태에 이르기까지 15년 동안 매립된 쓰레기는 약 9,200만㎥. 생활쓰레기, 건설 및 산업폐기물들이 마구잡이로 쌓여 높이 90m짜리 거대한 쓰레기산 2개가 우뚝 서게 됐다.
1993년 서울 생활폐기물 78%가량을 책임지던 난지도 쓰레기장도 한계를 맞이했다. 더 이상 서울에 쓰레기를 갖다버릴 곳은 없었다. 아니, 서울시는 시내에 쓰레기를 버리고 싶지 않았다. 서울은 쓰레기를 갖다버릴 수 있는 자리를 찾아 서울 바깥을 돌아다녔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곳이 당시 경기 김포군 서부 간척지 일대. 지금의 인천 서구 오류동 일대다. 경기도는 당연히 반발했다. 왜 서울의 쓰레기를 경기도에 내다버리냐고. 환경청이 중재에 나서 서울, 경기, 인천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를 함께 처리하는 시설을 만들자고 했다. 지금의 '수도권 매립지'다.
이렇게 탄생한 수도권 매립지는 초기에 극심한 악취와 엄청난 파리 떼로 신음했다. 주민들은 당초 약속과 달리 비위생적으로 쓰레기를 파묻고 있다며 반발했다. 제1매립장은 1992년부터 2000년 10월 매립 종료까지 쓰레기 6,400만 톤을 품고 임무를 완수한 뒤 골프장으로 변신했다. 그리고 2000년 개장한 제2매립장도 비교적 순조롭게 가동됐다.
한동안 잠잠했던 '쓰레기 갈등'은 2010년쯤 다시 폭발하기 시작했다. 서울시가 수도권 매립지 사용 연장을 요구하면서다.
원래 수도권 매립지는 2016년까지 사용될 예정이었다. 처음 조성할 당시 쓰레기 평균 배출량으로는 2016년에 매립지가 포화될 것으로 추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1990년대와 2000년대를 지나오면서 재활용과 분리수거가 생활화됐고 종량제 시행이 자리잡으며 매립량은 크게 줄었다. 서울시는 2010년 기준 매장량은 당초 계획의 절반 수준인 52.4%에 불과하니 사용 기한을 2044년까지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서울시는 매립지 사용 기한이 가까워졌음에도 불구하고 대체 장소 선정에 미온적이었다. 서울 내에는 웬만한 지역이 모두 개발돼 있어 쓰레기를 묻을 장소를 찾기가 애초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목동과 상계동, 강남 등에 소각장 부지 확보를 시도했지만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좌절됐다.
하지만 공유수면 매립면허 관청인 인천시는 '절대 불가' 방침을 고수하며 '2016년 수도권매립지 종료'를 발표했다. 1992년 조성 당시에는 매립지 일대가 허허벌판이어서 괜찮았지만, 20년이 지나는 동안 청라국제도시, 한강신도시 등 대규모 생활 단지가 들어서 인근 생활권에만 인구 100만 명이 거주하게 됐다는 것이다.
매립지 악취와 관련한 민원이 2010년에는 30여건에 그쳤지만 2011년 9월에는 한달 동안 1,000건에 육박했다. 이 곳 주민들은 2016년에 매립지가 폐쇄된다는 말만 철썩깥이 믿고 입주를 했기 때문에 매립지 연장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쓰레기 대란' 공포가 불어닥쳤다.
지방자체단체 간 치열한 다툼 끝에 결국 2015년 6월 29일 서울시, 인천시, 경기도와 환경부는 수도권 매립지 3매립장을 반으로 쪼개(3-1 매립장) 103만㎡을 추가로 사용하기로 합의했다. 대신 인천시에는 경제적인 보상을 해주고, 그 동안 각 지자체는 대체 쓰레기 처리장을 마련하기로 약속했다. 추가로 확보한 3-1매립장은 2025년에 포화 상태에 이를 것으로 추산돼, 각 지자체는 10년이라는 시간을 더 번 셈이었다.
5년이 지난 지금 '쓰레기 대란' 공포는 다시 찾아왔다. 인천시는 '이번에야말로 무조건 2025년에 매립지 사용을 종료하겠다'고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매립지 폐쇄까지 4년 밖에 남지 않았지만 서울시와 경기도는 대체 매립지 후보지 공모조차 못 하고 있다.
지난해 환경부, 서울시, 인천시, 경기도가 발주한 ‘수도권 폐기물 관리 전략 및 대체매립지 조성 연구용역' 결과 대체 매립지 조성까지는 10년 8개월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 당장 시작해도 늦었다는 이야기다. 최병성 초록별생명평화연구소 소장은 "막상 대란이 일어나면 어떻게든 돈 마련해서 주면 되겠지, 이런 안일한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라며 "2025년엔 굉장히 큰 사회적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남춘 인천시장은 이날 서울 등 인접 지자체를 향해 "5년을 허송세월로 낭비하고 이제야 허울뿐인 대체 매립지 공모를 추진하고 있다"면서 "형식적 대체지 공모 후 연장 수순을 밟으려던 누군가의 행정편의식 발상과 꼼수는 우리의 실천 앞에서 결코 통하지 않을 것"이라며 날을 세웠다. 일부 인천 주민들은 2025년 매립 종료 이후 매립지로 향하는 도로를 폐쇄하는 등 초강경 대응까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도권의 쓰레기 처리 역사는 폭탄 돌리기의 연속이었다. 일단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내다버리다가 그 곳 주변까지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면 또 다른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옮겨가기를 반복했다. 특히 매립은 쓰레기 처리에 있어서 가장 후진적인 수단이다. 아무리 눈에 안 보이는 곳에 버린다 한들 매립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는 결국 우리에게 피해를 입히게 된다.
때문에 쓰레기 매립지 논란을 또 다른 매립지 조성으로 돌려막는 악의 고리를 이제는 끊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우선 '일회용 경제'에서 벗어나 '재사용 경제'로 나아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기업에서 물건을 생산할 때부터 폐기 단계까지 고려해 쓰레기 발생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한 번 생산된 제품들은 되도록 재사용할 수 있는 구조를 정착시키는 것도 필요하다.
이마트, 아모레퍼시픽 등이 운영하고 있는 '리필샵'이 본보기가 될 수 있다. 최병성 소장은 "매립은 최후의 방법"이라며 "아무리 줄여도 폐기물은 발생하게 돼있는 만큼 이를 재활용할 수 있게끔 정부 차원에서도 제도화하고 기술 개발을 지원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쓰레기 자체를 줄이고 분리수거 교육을 실시하는 것도 장기적으로 중요하지만, 지금 여기에서 발생하고 있는 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는 시급한 당면 과제다. 전문가들은 선진적인 소각 시스템을 적극 활용하는 방법을 논의해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쓰레기 책'의 저자 이동학 작가는 "이미 소각 시설로 인한 유해 가스를 대폭 줄일 수 있는 기술 발전이 있다"라며 "그 동안 소각 시설에 대한 토론의 기회가 없어 혐오시설화돼 왔다"라고 말했다. 그는 "쓰레기를 소각했을 때 '유해하다'라고 정해놓은 기준보다 낮은 수준으로 가스를 관리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무엇보다도 '내가 만든 쓰레기를 내가 처리한다'는 원칙을 실행시키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소각 시설을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소각 시설은 우리 가까이에, 도심 곳곳에 필요하다고 이 작가는 설명했다.
그는 "주민감시체계 안으로 들여와서 유해가스도 덜 발생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법에 허용된 테두리 안에서 운영되게끔 관리받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최 소장 역시 "지역 환경과 어우러진 지역 시민의 놀이터나 문화공간 등으로도 함께 활용할 수 있는 시설로 지어서 폐기물을 자체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