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여자아이가 대한민국 노인이 돼서 이렇게 (법정에) 왔습니다. 판사님을 믿고, 우리 법을 믿고, 저는 기대했습니다. 왜 (해결) 못 해 줍니까! 왜 못 해 줍니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인권운동가인 이용수(92) 할머니는 눈물과 원망 섞인 목소리로 호소했다. 이 할머니를 비롯한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 등 20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의 마지막 재판에서다. 그는 “저는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피해자가 (살아)있을 때 사죄와 배상을 하지 않으면, 일본은 영원한 전범국가로 남는다”고 강조했다.
11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부장 민성철) 심리로 열린 이번 소송의 마지막 기일에 이 할머니는 원고로서의 당사자 본인 신문 절차를 위해 참석했다. 그는 자신이 위안부로서 겪었던 피해를 직접 밝히기 위해 휠체어를 탄 채로 법정에 들어섰다. 차분하고 담담하게 말문을 열었으나, 30여분간 발언이 이어지면서 점점 끓어오르는 심경을 감추지는 못했다.
먼저 소송을 낸 이유에 대해 이 할머니는 “일본이 아직까지 거짓말만 하고, 우리나라 또한 같이 나서서 해결해야 하는데도 하지 않아 한국의 법에라도 호소하기 위해 이렇게 왔다”고 밝혔다. 이어 “지금까지 수차례 나라 대 나라로 해결해 주리라 믿었다”면서 “절박한 심정이고, 너무 가슴이 아프다”고 호소했다. 진술 도중 2015년 박근혜 정부와 일본 정부의 위안부 문제 합의와 관련,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거센 비판을 쏟아내기도 했다.
특히 대만 위안소에서의 경험담을 상세히 밝혔다. 그곳에 도착했을 당시 한 언니가 ‘넌 너무 어리다. 내가 감싸줄게’라는 말과 함께 숨겨 줬지만, 군인들이 와서 칼로 찌르고 자신을 데려갔다고 했다. “살려 달라”고 빌었으나, 일본 군인들은 “조센징 죽인다”라면서 자신의 손을 결박했다는, 죽음의 공포로 떨었던 기억도 되살려 냈다. 그러다 8ㆍ15 해방이 한참 지나서인 1946년 5월쯤에야, 수용소를 한 차례 옮기고 나서 배를 타고 한국에 돌아왔다고 덧붙였다.
진술 말미에는 “우리는 직접적인 피해자다. 판사님도, 여러분들도 간접적인 피해자”라면서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이 할머니는 재판부를 향해 “그런데 4년 전에 소송을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하신 게 뭐가 있냐. 법에 계신 분이 그렇게 해도 되겠냐”라고 소리쳤다. 그러면서 “저는 얼마 남지 않았다. 나이 90이 넘도록 판사님 앞에서 이렇게 호소해야 됩니까. 책임을 지세요”라고 한 뒤, 끝내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보였다.
재판부는 내년 1월 13일 오후 2시에 선고를 하기로 했다. 앞서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은 지난 2016년 12월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한국 법원에 냈다. 일본 정부가 소장을 3차례 반송하며 재판이 3년간 발걸음조차 떼지 못했으나, 지난해 3월 우리 법원이 소장과 소송안내서 번역본을 공시송달하고 나서야 비로소 재판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