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난 11월 3일 펼쳐진 선거에서 승리, 제 46대 미 대통령으로 선출된 후 정권 인수를 위해 재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결과에 불복 의사를 밝히고 소송전을 예고하고 있지만 바이든 당선의 대세를 꺾을 수는 없을 것이다.
바이든의 당선으로 미국 정치, 산업, 문화 등 모든 영역에 새로운 질서가 들어선다. 특히 테크,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테크, 미디어 산업은 국가의 주력 정책 산업이자 화웨이, 틱톡 사태에서 보듯 국가 안보 및 지정학 이슈가 됐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와 참모들은 아직 권력 이양을 받기 전이지만 이미 테크 및 통신 미디어 산업을 어떻게 끌고 갈지, 사업자들과의 어떤 관계를 구축할지 검토에 들어갔다.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 100일내 챙겨야 할 중요한 이슈 중 하나가 ‘테크·미디어’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테크, 미디어 산업의 중심인 실리콘밸리 분위기는 어떨까. 일단 안도하는 분위기다. 특히 ‘친밀도’ 측면에서 실리콘밸리 기업들에게 조 바이든 대통령-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조합은 “이보다 좋을 수는 없다”고 할 수 있는 정도다.
실제 바이든 당선자는 페이스북 출신 제시카 허츠(Jessica Hertz)와 애플에서 정부 담당 업무를 하던 신시아 호건(Cynthia Hogan) 부사장을 인수위 팀에 합류시켰다. 에릭 슈미트 전 구글 회장은 바이든 후보를 위해 대규모 모금 활동을 했으며 현재 바이든 정권의 신기술 산업 TF를 이끄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구나 부통령 당선자인 카멀라 해리스는 ‘실리콘밸리’ 출신이다. 오클랜드에서 태어났으며 샌프란시스코에서 지방검사를 역임했다. 즉, 캘리포니아주 상원의원 시절에도 실리콘밸리를 무대로 활동했고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와 마크 베니노프 세일즈포스 최고경영자(CEO)의 지원을 받았으며, 그의 여동생과 결혼한 토니 웨스트는 현재 우버의 법률고문으로 재직 중이다.
바이든 당선자는 오바마 대통령 아래 부통령을 8년간 지냈다. 오바마 대통령 시대 8년은 테크 기업이 급성장하고 ‘공룡’의 위치에 올랐던 시기였다. 테크 회사 주요 임원들은 “바이든은 테크 기업들을 편하게 느낀다”고 전한다.
트럼프의 이민 정책은 미국 IT산업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 정책은 외국인들이 미국에 넘어오는 것을 막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때문에 고학력 기술 노동자들도 영향을 받아, 기술 대기업들이 이들을 채용하는 데도 악영향을 미쳤다.
워싱턴에 위치한 기술 거래 회사 The Information Technology Industry Council은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이 취임하면 트럼프 정부가 내린 이민과 관련한 다양한 행정 명령을 철회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이와 함께 미국 노동 시장의 수요에 대응에 비이민 비자 프로그램을 개정할 것으로 예측했다. H-1B 등 기술 대기업에 필요한 노동 비자는 대상이 크게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바이든 미 대통령 당선인은 또 고숙련 노동자 공정우대법(Fairness for High-Skilled Immigrants Act)을 지지할 가능성이 높다. 하원을 통과한 이 개정안은 현재 미상원에 계류돼 있다. 개정안의 골자는 고학력 기술 노동자들의 미국 거주를 확대하고 위해 국가 영주권 발급 쿼터를 없애는 것이다. 현재는 영주권은 한 나라 당 최대 1만 장만 발급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 법이 통과되면 국가 쿼터가 없어져 특히 많은 인도계 노동자가 미국에서 영주권을 받을 수있게 된다. 실리콘밸리의 경우 IT와 AI 등에서 인도계 지식 기술 노동자를 더 많이 채용할 수있게 된다. 반면 한국 출신 이민자들은 다소 피해를 볼 것으로 전망된다.
바이든 정부는 디지털 격차 해소를 위한 광대역 인터넷 보조금을 늘리고 도시와 농촌에서 5G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등 신산업 육성에 관심이 많다.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산업이 폭발적 성장 중인데 이를 위해선 네트워크 품질을 끌어 올려야 하기 때문. 바이든 당선자가 테크 기업을 통한 미국의 패권 유지를 계속 원한다는 점도 고려 사항이다. 바이든은 중국을 실질적인 위협으로 지칭하면서 강경 대응을 시사한 바 있고, 민주당의 공약에도 중국의 불공정행위나 지식재산권 탈취 등에 대한 대응 의지가 명시돼 있다.
인공지능 및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중국이라는 강력한 경쟁 대상을 앞두고 미국의 또 다른 핵무기나 다름없는 테크 기업들의 날개를 꺾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바이든 시대가 오바마 2.0, 테크 황금 시대로 복귀하게 될 것으로 기대하는 실리콘밸리 테크, 미디어 기업은 거의 없다. 지나치게 커진 플랫폼 파워로 인해 실리콘밸리 기업이 이제는 경제 성장의 ‘짐’이라는 인식이 퍼졌기 때문. 지난 10월 민주당 주도의 미 하원 법사위 반독점 소위원회가 공개한 디지털 시장 내 경쟁에 대한 조사결과를 담은 보고서에서는 4대 대형 IT 기업들의 독점을 지적했는데 이는 사실 민주당과 공화당 등 양당을 초월해 지지받는 이슈다.
바이든 정권에서도 이들 기업에 대한 규제가 완화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다. 반독점 이슈와 케이스에 대한 공격적인 접근을 할 가능성이 크다. 디지털 광고 시장에서의 구글의 지배력 남용과 관련한 미 법무부의 소송에도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페이스북이나 구글 등이 자신들의 플랫폼의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 관련 중소 기업을 인수하는 ‘지배 플랫폼의 인수’를 어렵게 하는 법안을 준비 중이다. 민주당은 또 독점금지법(Antitrust Law)을 위반하는 회사를 기소하기 쉽도록 법안의 개정을 추진 중이다.
바이든 당선자는 과거 의회가 섹션 230을 철회할 것을 권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통신품위유지법(Communications Decency Act)의 섹션 230은 플랫폼 사업자들이 이용자들이 작성하거나 게재한 콘텐트로 인해 처벌받는 것을 면제한 일종의 ‘면책 법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공격할 때 이 섹션 230을 수정하겠다고 강하게 협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행 법에 따라 보호받는 기술 대기업들의 권한을 약화시키기 위해 법무부, 상공부, 연방통신위원회(FCC), 연방무역위원회(FTC)를 모두 동원해 행정 명령을 내리는 등 섹션 230과의 전쟁을 선포했고,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소셜 미디어 서비스가 보수주의자들의 게시글이나 목소리를 선택적으로 검열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바이든 당선자는 트럼프의 행정명령을 철회하거나 이 이슈와 관련한 다양한 행정부의 대응을 중단시킬 가능성이 있다. 지난 36년간 상원의원으로 근무한 바이든은 의회 권한을 약화시키기 위해 연방 기관을 이용하는 트럼프의 노력(행정명령)을 지지할 가능성이 낮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만약 미 하원이 섹션 230 개정안을 통과시킬 경우 바이든은 이 법을 승인할 가능성도 예측된다. 현재의 반대는 트럼프 정책에 대한 반발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워싱턴에서 기술 대기업을 위한 로비스트로 활동 중인 브루스 메힐맨(Bruce Mehlman)은 더인포메이션과의 인터뷰에서 “섹션 230의 보호 조항 중 몇몇 부문을 없애려는 의지는 양당 모두에게 존재한다”고 설명한 바 있다. 기술 대기업이 지나치게 면책 조항 뒤에 숨는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 언론들은 대통령 취임 이후 바이든은 미국과 중국의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하고 있다. 바이든은 중국을 계속 압박할 것으로 보이지만, 무역 전쟁에 접근하는 미국의 일방주의 폐기와 급증하는 중국의 글로벌 시장 영향력에 맞서기 위해 일본과 유럽을 끌어들일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교역 전문가들은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에 대한 정책에서 보다 체계적으로 접근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시절엔 광범위한 교역 목표보다 화웨이와 틱톡의 모회사 바이트댄스(ByteDance) 등과 같은 개별 회사에 대한 제재에 집중했다. 특히, 국가 보안에 대한 우려와 연관됐다며 바이트댄스나 위챗과 같은 기업에 집중했지만 그 의도와 목표는 불분명했다.
물론 미국 국가주의 관점에서 바이든이 트럼프의 정책을 완전 폐기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개별 기업보단 전체적인 무역 구도에 관심을 기울일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에필로그
지난 회 소개했던 캘리포니아주의 ‘주민발의안 22호(Prop22)’가 통과됐다. 지난 3일 미국 대선과 함께 치러진 투표에서 유권자 58%가 찬성했고 반대는 41.7%였다. 노동 문제가 있음에도 편의성에 광범위한 지지를 보낸 것으로 분석된다. 이후 우버, 리프트 주가는 10% 이상 폭등했다. 주민발의안22는 승차 공유와 배달 앱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직원이 아니라 독립계약자로 분류하되, 최저임금의 120%를 보장하고 주 15시간 이상 일할 시 건강보험료를 준다는 내용이다. 투표를 앞두고 우버, 리트프, 도어대시 등 공유경제 업체들은 '공유경제, 소위 긱 이코노미의 명운이 걸렸다'며 발의안 통과를 위해 총력 지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