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국가인권위원회와 함께 '차별금지법' 도입을 위한 비공개 간담회를 열었다. 종교계를 비롯한 시민사회의 의견을 듣고 입법 방향을 논의하기 위해서다. 미온적이었던 여당 측 움직임에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까지 나서 힘을 실으면서 '민주당표 차별금지법' 논의에 물꼬가 트일 가능성이 커졌다.
10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이상민 민주당 의원과 인권위는 이달 5일 국회에서 비공개 간담회를 열고 차별금지법 관련 여론을 수렴했다. 종교계에서는 개신교 원로를 비롯한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대한성공회 측 등이, 시민사회에서는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민주언론시민연합,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참여연대 등이 참석했다. 간담회에는 민주당 의원 5명이 자리를 지켰다. 행사는 일부 반대 단체의 돌발 행동을 우려해 비공개로 조용히 진행됐다.
특히 이날 간담회에는 최 위원장이 직접 나와 국회의 노력을 촉구했다. 최 위원장은 "(정의당의) 법안이 발의돼 있고, 인권위도 시안을 냈는데 (일부) 종교계의 반대로 어떤 논의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대화를 통해서 오해를 불식시켜 나가야 한다"고 발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좀처럼 논의를 진척시키지 못하는 민주당의 태도 변화를 요청한 것이다.
시민사회에서도 입법 노력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고 한다. 한 참석자는 "종교계 지도자들이 '중지가 모이지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리면 결국 법은 도입될 수 없는 만큼 우선 입법을 진행하면서 의견 수렴을 거치는게 합리적'이라는 의견을 주로 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특히 개신교계 참석자들은 "전체 개신교가 법안에 다 반대하는 건 아니다"라며 "교계의 주된 우려는 교리, 설교가 처벌될 수 있다는 점인데 종교 활동은 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는 입장을 냈다. 고용 · 행정 영역에서 차별을 막으려는 법의 주된 취지가 교계에 왜곡돼 알려져있다는 얘기다. 이들은 '동성애 반대'를 앞세워 차별금지법을 막아 세우고 있는 것이 종교계 전체가 아니라 일부 극우 · 보수 개신교계라는 점도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차별금지법은 2007년 참여정부 때 법무부가 정부 입법으로 처음 발의한 뒤, 이를 ‘동성애 법’으로 규정한 보수 개신교계의 총공세 속에 13년 동안 7번의 발의와 폐기를 반복했다.
이번 간담회에서 종교계까지도 민주당의 노력을 촉구하고 나선 만큼, 당내 논의가 급물살을 탈 여건은 일단 마련됐다. 21대 국회에 발의된 차별금지법은 현재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올 6월 대표발의한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유일하다. 인권위도 장 의원 법안 발의 직후 '인권위표 차별금지법'에 해당하는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평등법)' 시안을 공개하며 국회의 법안 제정을 촉구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침묵모드'를 유지했다. 민주당 소속 2명 의원이 개인적으로 정의당 안에 이름을 올렸을 뿐이다.
일단 이상민 의원은 인권위 평등법 시안을 토대로 '민주당표 차별금지법’ 대표 발의에 속도를 낸다는 구상이다. 이 의원은 이날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종교계에서도 불합리한 차별적 행위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큰 공감대가 형성된 상황"이라며 "우려가 여전하다면 이를 뜨겁게 토론해서라도 입법 우선순위로 만들어 보고자 한다"고 다짐했다.
물론 이 흐름이 지도부의 전격적인 태도 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통과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내용을 후퇴시킨 '무늬만 차별금지법'이 등장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장 의원 안은 '3,000만원 이하의 이행강제금' 등 강제조치가 담겼지만, 인권위 시안에는 처벌조치가 없다. 이런 우려에 대해 이 의원은 "성적 지향을 법안에서 다루되 사회적 수용성을 높이는 방법을 고민 중"이라고 했다. 미미하게나마 시작된 기류 변화에 정의당은 일단 반색했다. 장 의원 측은 “강제조치 등 각론은 논의 여지가 충분한 만큼 우선 민주당이 법안에 힘을 실어 제대로 된 논의를 시작했으면 한다"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