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루킹과 악수가 공모 정황"...김경수 재판부의 유죄 판단 이유

입력
2020.11.10 15:01
시연 직후 '악수'로 킹크랩에 긍정적 태도
온라인정보보고·댓글 작업 기사 목록 받아
드루킹 일당 범행의 유지·강화에 기여


김경수 경남지사가 항소심에서도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에 공모한 혐의를 유죄로 인정받았다.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2부(부장 함상훈)는 6일 김 지사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하면서 "2016년 11월 9일 김 지사가 드루킹 일당의 사무실에서 댓글 조작 프로그램인 ‘킹크랩’의 시연을 봤다"고 결론내렸다. 당초 김 지사가 시연을 보고 고개를 끄덕거렸다는 증인의 진술이 있었지만 재판부는 이와 달리 김 지사와 드루킹의 악수를 킹크랩 개발에 대한 긍정적 사인으로 판단했다.

“김 지사와 드루킹의 악수가 공모의 정황”

한국일보가 10일 확인한 판결문에는 김 지사가 킹크랩 시연을 봤다는 재판부의 확신이 담겨 있다. 재판부는 당시의 로그 기록 및 개발자 우모씨의 일관된 진술을 바탕으로 김 지사가 킹크랩 시연을 본 것으로 판단했다. 우씨는 재판 내내 “내가 김 지사와 드루킹 김동원 씨 앞에서 직접 시연을 했다”고 주장했다.

다만 항소심 재판부는 1심과 달리 "김 지사가 고개를 끄덕여 킹크랩 개발에 동의했다"는 드루킹 일당의 주장은 허위라고 판단했다. 강의장 밖에서 시연 장면을 봤다는 양모씨가 진술을 계속해서 번복했기 때문이다. 양씨는 김 지사가 고개를 끄덕인 시점이나 시연 장면을 목격한 장소(창문, 열려있는 문, 자신의 자리 등)를 특정하지 못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대신 공모의 정황 증거로 ‘악수’에 주목했다. 재판부는 먼저 드루킹 일당이 모두 “김씨와 김 지사가 강의장에서 나온 이후 가볍게 악수를 하고 돌아갔다”고 진술한 것을 짚었다. 그러면서 “시연 후 김씨는 김 지사의 의견을 묻는 게 자연스러웠을 것이고, 김 지사 역시 어떤 형식이든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김 지사가 악수를 통해 킹크랩 개발 및 운용에 관한 긍정적인 태도를 보인 것임을 인정할 수 있다”고 했다.




시연 이후 교류로 드루킹의 범행의지 강화

항소심 재판부는 "시연 이후 두 사람의 교류가 드루킹 일당의 범행의지를 강화했다"고도 강조했다. 김 지사가 김씨로부터 온라인 정보보고와 댓글 작업을 한 기사 목록을 주기적으로 받았고, 김 지사도 김씨에게 네이버 뉴스 기사 온라인 주소(URL)을 보낸 것이 댓글 작업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김 지사가 김씨의 요구에 따라 윤평 변호사를 당시 문재인 후보의 선거대책위원회에 합류시키거나, 도두형 변호사를 오사카 총영사직에 추천한 것도 "이들의 범행 결의를 강화하고 유지하는 행위"라고 했다. 대선 즈음 김 지사와 김씨가 6차례에 걸쳐 만났고, 문 후보자의 기조연설문과 김씨가 작성한 경제민주화 문서가 상당 부분 일치하는 등 두 사람이 상호 긴밀한 협력관계를 쌓아간 것도 공모 정황으로 보았다.


김 지사의 진술로 무용지물 된 ‘닭갈비 영수증’

그러나 김 지사 측이 1심의 유죄 판결을 뒤집기 위해 반전 카드로 제시한 '닭갈비 영수증'은 크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 김 지사 측은 닭갈비집 사장의 증언을 동원해 "드루킹 일당 포장해 온 닭갈비를 저녁식사로 먹느라 시연을 볼 시간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오후 6시 50분 사무실에 도착해 한 시간 동안 식사를 했고, 8시부터 한 시간 동안 댓글 활동에 관한 브리핑을 들은 뒤 9시 15분에 떠났던 동선을 제시한 것이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포장했다는 것만으로는 식사했다고 볼 수 없다"며 김 지사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 지사가 "두 차례의 산채 방문 중 한 차례 고기를 구워 먹은 것 외에는 뚜렷하게 기억하지 못한다"고 진술한 게 발목을 잡았다. 재판부는 김 지사가 산채에 처음 방문했던 그해 9월 28일 드루킹 일당 중 한 명이 한우를 결제한 흔적이 남아있는 것을 근거로 "피고인이 사무실에서 식사한 것은 첫 방문 때였다"고 봤다.

윤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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