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힌 문화유산이 이렇게라도 알려지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요즘 부여에서 ‘노을맛집’ ‘인생사진’ 명소로 뜨는 곳을 꼽으라면 단연 임천면 성흥산성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성흥산성 사랑나무’다.
산성 꼭대기에 우뚝 선 아름드리 느티나무의 독특한 수형이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정상에서 보면 나무의 몸통과 오른쪽 가지가 하트를 절반으로 쪼갠 모양이다. 그 사이에서 갖가지 포즈로 사진을 찍어 가로로 돌려 붙이면 완벽한 사랑(하트)이 완성된다. 배경엔 하늘만 걸리기 때문에 하트 모양이 한층 또렷하다. 해질 무렵 붉은 노을이 번지면 피사체의 윤곽은 역광에 선명해지고 주변엔 따스한 기운이 감돌아 사진의 효과는 배가된다. ‘대왕세종’ ‘계룡선녀전’ 등 여러 드라마에 배경으로 나왔지만, 지난해 ‘호텔델루나’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단숨에 연인들의 인생사진 성지로 자리 잡았다. 사진 찍기에만 정신을 팔면 놓치는 장면도 많다. 정상에 서면 멀리 금강 하류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노을에 물든 산 능선도 아름답다.
성흥산성은 백제의 수도였던 웅진성(공주)과 사비성(부여)을 지키기 위해 금강 하류 부근에 쌓은 석성이다. 백제 동성왕 23년(501) 위사좌평 백가(苩加)가 쌓았다고 전한다. 위사좌평은 당시 고위관리직으로 이 성의 전략적 중요성을 뒷받침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성을 쌓은 백가는 자신을 이곳으로 보낸 것에 앙심을 품고 동성왕을 살해하고 난을 일으켰으나 무령왕에 의해 평정되고 죽음을 맞았다. 백제 때 쌓은 성곽 가운데 연대를 확실히 알 수 있는 유일한 성이자 옛 지명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성흥산성의 백제시대 명칭은 가림성이었다.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산성에 오르기 전 꼭 들러야 할 곳이 있다. 바로 아래에 대조사라는 작은 사찰이 있다. 법당 뒤편으로 돌아가면 특이한 모양의 불상이 바위 틈에 뿌리 내린 소나무의 호위를 받으며 서 있다. 미래 세계에 중생을 구제한다는 석조미륵보살입상(보물 제217호)으로 높이가 10m나 된다. 머리 위에는 이중 보개(덮개)를 얹은 네모난 관(冠)을 썼고, 관의 네 모서리에는 작은 풍경이 달려 있다. 넓적한 얼굴에 양쪽 귀와 눈은 비현실적으로 크고 코와 입은 상대적으로 작아서 독특한 느낌을 준다. 고려시대에 유행한 거대한 불상으로 논산의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보물 제218호)과 쌍벽을 이루는 작품이다.
관광객이 늘어나자 성흥산성 바로 아래에 주차장을 마련했는데, 마을에서 올라가는 길은 차 한 대 겨우 지날 정도로 좁고 가파르다. 운전에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주차장에서 정상까지는 걸어서 약 10분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