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중국에 대해 강하게 나가야 합니다."(2020년 3월)
중국에 우호적이었던 조 바이든 제 46대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올해 3월 포린어페어스지 기고에서 과거와 확연하게 달라진 중국에 대한 인식을 드러냈다. "중국이 제멋대로 하도록 둔다면, 미국과 미국 회사로부터 기술과 지적재산을 훔쳐가 결국 미래 기술과 산업에서 우위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며 중국이 미국의 패권을 위협하는 존재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와 마찬가지로 중국의 기술 굴기를 꺾어야 한다는 워싱턴의 전반적 반중 정서가 반영된 것이다.
다만 바이든 당선인이 구상하는 대중 전략은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접근보다 스펙트럼이 훨씬 넓다는 평가가 나온다. 무역과 기술 분야에서 중국의 '약탈'을 막아야 한다는 기조는 변함 없으나 기후변화 대응과 같은 글로벌 이슈에선 중국과의 협력에 열린 모습이다. 미중간 경쟁과 협력이 외교와 군사 양면에서 다층적으로 펼쳐질 가능성이 커 한국 정부의 대응은 한층 까다로운 '고차방정식'이 됐다.
바이든 당선인은 중국이 세계 경제를 장악하는 데 날개를 달아준 인물로 미국 내 대표적인 대중 비둘기(온건)파였다. 상원의원 시절인 2000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인준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장본인이다. 그는 2001년 상원외교위원회 의원들과 중국을 방문했을 때 장쩌민 주석에게 "미국은 번영과 통합의 중국이 글로벌 무대에 오르는 것을 환영한다"는 덕담을 건넸고 부통령 시절인 2011년 중국 쓰촨대에서 진행한 연설에선 "중국의 부상은 긍정적인 발전"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바이든 당선인의 대중 언급은 최근 몇 년 사이 강경해졌다. 올해 초 열린 민주당 경선 토론에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민주주의의 뼈가 없는 깡패"라고 지칭한 게 대표적이다. 지난달 22일 대선 후보 2차 토론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과 같은 깡패들과 어울리며 미국의 동맹을 멀어지게 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바이든 당선인이 중국에 등을 돌린 것은 미국의 '선의'가 중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 이용됐다는 인식 때문이다. 중국의 경제가 발전하면 전체주의를 버리고 미국이 구축한 국제 규범을 따르는 '책임있는 이해관계자'가 될 것이란 기대가 무너진 것이다. 이상만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미국은 최근 40년간의 대중 관여 및 포용 정책이 중국의 성장을 견제하지 못했고 오히려 거대한 괴물을 만들었다고 자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바이든 당선인의 대선 공약이라 볼 수 있는 '2020 민주당 정강 정책'의 대중 정책은 더욱 강경하다. "동맹국들과 함께 중국에 대항한다", "미국의 제조업을 약화시키는 중국에 공격적인 행동을 취한다" 등 공격적 표현이 많다. 기술 주도권을 잡기 위한 '화웨이 때리기' 역시 바이든 행정부도 계속하겠다는 신호다. 특히 '나홀로 플레이'를 즐겼던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미국 단독이 아니라 팀워크로 중국을 포위한다는 구상이어서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들의 부담은 더욱 커지게 됐다.
민주당은 정강정책에서 "'하나의 중국'이라는 원칙을 이행한다"는 기존 내용도 삭제했다. 민주당이 대만을 정식 국가로 인정한 것은 아니지만 중국을 충분히 자극할만한 내용이다. 또한 '위구르 등 소수민족에 대한 잔혹한 행위를 규탄한다"는 언급도 포함시켰다. 홍콩, 신장 위구르 자치구 등에서 중국의 인권 탄압을 비판하며 압박에 나서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다만 이 같은 대중 전략이 트럼프 정부가 추진했던 일방적인 중국 봉쇄 노선은 아니다. 기후 변화 대응은 대표적인 미중 협력 분야로 꼽힌다. 바이든 정부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과 관련해 글로벌 보건시스템 구축 등도 초국가적 과제로 내세워 중국과의 협력에 공을 들일 것으로 보인다. 전세계 공동의 노력이 필요한 문제는 글로벌 다자협력체계를 구축해 미국의 리더십을 회복하겠다는 것이다. .
이처럼 미중 경쟁이 사안에 따라 갈등이냐 협력이냐로 갈릴 수 있어 한국 정부가 더욱 정밀하고 전략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직 외교부 고위관계자는 "미국의 중국 포위 전략에 편승할지, 중견국으로 제 목소리를 낼 지 갈림길에 있다"며 "개별 사안에 따라 '국익우선 원칙'을 확립해 실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북핵 문제는 정세에 따라 미중간 격렬한 갈등 소재가 될 수 있지만, 거꾸로 미중이 손을 맞잡을 수도 있는 양면적 이슈다. 북한이 전략 도발에 나서고 중국이 이를 두둔하면 한반도는 그야말로 미중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신 냉전의 한 복판으로 휘말려들 수 있다. 반면 북미 비핵화 협상 국면이 조성될 경우 북핵 문제는 미중 협력의 장이 될 수 있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바이든 정부가 중국에 대해 부정적이지만, 당 정강정책을 통해 기후변화와 비확산 문제에선 중국과의 협력에 열려 있는 모습을 보였다"며 "우리 정부가 한미 및 한중 소통을 통해 비핵화 문제에 대해선 미중간 협력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