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이분법(binary gender)으론 성정체성을 아우를 수 없고 '넌바이너리(Non-Binary)' 안에 다채로운 젠더퀴어(gender queer)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제야 세상이 깨닫고 더디나마 수긍해가고 있다. '퀴어'란 말이 더는 '퀴어'하지 않게 되고, 상위 범주의 용어들이 희미해지면, 하위의 각각이 개별적 집합명사로 나란하게 될 것이다. 들국화는 식물 중에서도 종 변화(변이)가 유달리 왕성해서 전문가들도 잘 구분하지 못한다지만, 그래서 뭉뚱그려 들국화라 불러도 그리 책잡힐 일은 아니라지만, 산국 감국 구절초 쑥부쟁이 말고도 수많은, 저마다 고유한 이름들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19세기 아일랜드 출신 외과의사 겸 군의관 제임스 배리(James Barry, 1795.11.9~ 1865.7.25)는 생물학적 여성으로 태어나 남성으로 살다가 젠더 정체성에 물음표를 남기고 묻혔다. 그는 '마거릿 버클리(Magaret Bulkley)'란 이름의 소녀로, 런던의 삼촌에게 얹혀 성장했다. 독신의 예술가였던 삼촌은 1809년 숨지며 얼마간의 재산을 버클리에게 남겼다. 버클리는 삼촌의 성(gender)과 이름까지 물려받았다. 그렇게 제임스 베리가 됐다.
버클리였던 배리는 여성은 입학이 불가능하던 에든버러 의대를 졸업하고 육군 군의관이 됐다. 인도 등 당시 영국 식민지를 두루 돌며 경력을 쌓았고, 1816년 남아공에선 알려진 바 최초로 제왕절개 수술에 성공하기도 했다. 유능하고 깐깐한 외과의였다는 그는 군 병원의 위생과 운영 전반을 감독하는 군의감찰관으로도 활약했다. 나이팅게일이 활약한 크림전쟁의 종군 군의관으로도 일했는데, 그의 다혈질 성미에 질린 나이팅게일이 '야수 같은 놈(brute)"이라 부른 적이 있다는 기록이, 영국 국립문서관리국 기록에 남아 있다.
그는 독신으로 살다가 1864년 은퇴했고, 이듬해에 이질로 별세했다. 그의 생물학적 성은 검시 과정에서야 확인됐고, 런던의 한 묘지에 '제임스 배리'로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