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전직 대통령 시절, 청와대 인사비서관실에서 올린 1급 공무원(고공단 ‘가’급) 전보 인사안이 최종 재가 과정에서 거부되었다. 고위공무원 전보 인사는 법령상 대통령이 발령권자이지만 통상 확인 수준으로 처리된다. 그런데 승진 대상자가 대통령 후보경선 경쟁자의 지휘를 받던 전력이 인사권자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던 것이라는 소문이 전해졌다.
B 전직 대통령이 핵심 참모를 임용하는 과정에서, 대통령이 오랜 교분을 가졌지만 임용 직책의 비중에 비추어 그렇게 탐탁하게 생각지 않았던 인사가 추천되었다. 대통령은 “사적 관계에서는 높게 평가하지 않았지만, 여러분이 추천하는 것을 보니 내 선입견이 대통령 된 뒤로는 맞지 않는 것 같다”면서 주저하지 않고 추천된 사람을 임용했다고 한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과 평검사들과의 공개토론에서 거친 화법의 질의 응답을 통해 대통령의 심기를 어렵게 했을 수 있었던 검사들이 그 후 인사상의 불이익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아마도 상급자 앞에서 직언하는 젊은 검사들의 패기가 자신의 사적 권위 손상보다 더 값지다고 생각한 결과라고 판단할 수 있다.
공직자의 권한 행사 시 자신의 감성적 인식을 얼마나 적절히 절제하느냐는 공적 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다. 해서는 안 될 일을 스스로 규율하고, 마음에 내키지 않지만 꼭 해야 할 일을 흔쾌히 행하는 내면의 '자기 규제 역량'은 책임 공직자가 갖추어야 할 요건의 하나이다. 설령 일시적으로 불리한 듯 보일지라도 과감히 절제력을 발휘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공적 권위를 높일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재량 영역으로 간주되는 인사권 행사에 있어서도 무언의 절제가 긴요한데, 권한의 행사 여부 자체를 신중히 판단해야 하는 감사·감찰 영역에서의 절제력은 공적 권위와 신뢰를 확립하는데 필수적 요소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최근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의 갈등, ‘월성 원전 1호 조기 폐쇄’의 타당성에 대한 감사원 감사를 접하면서, 감독권 행사 과정에서 절제력 발휘가 새삼 아쉬워지고 있다.
대통령과 감사원,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관계는 법체계상 감독 권한이 명시되어 있지만 그 권한은 사실상 해당 기관의 설립 목표와 준자율적 의사 결정을 보장하기 위해 '발생할 수 있는 일탈'에 대비하는 예외적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이들 기관에 부여된 헌법적 가치의 실현을 보장하는데 주력해야 할 법령상의 상위 기구가 감독권을 빈번히 행사한다면 해당기관의 독자적 존립 가치를 훼손할 여지가 있다. 설령 선출 권력이라고 해서 이들 기관에 대해 총체적 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믿음은 역설적으로 헌법적 가치를 훼손할 수 있는 자기 모순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를 배제할 수 없다. 헌법기관의 헌법적 가치를 수호해야 할 궁극적 책무는 선출 권력에 있기 때문이다.
선출 권력의 개입 불가피성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이에 못지않게, 기관 구성원의 전문가적 공직 윤리, 기관의 전통과 상당수 국민의 보편적 기대가 함께 고려될 때 헌법적 가치가 실현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 특히 법질서 유지의 책무를 맡고 있는 검찰 조직의 경우, 법 집행의 객관성·전문성·일관성을 고려할 때, 여타 행정부서와는 다른 기준의 정무적 통제의 전통이 뿌리내려야 한다.
선출 권력이 '전가의 보도(傳家寶刀)'라는 생각을 접고 '균형된' 절제의 시스템을 지켜 나갈 때 프랑스 계몽정치사상가 장자크 루소가 강조한 '일반의사(Volonté Générale)'에 근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한다면 선출 권력 정당성의 진가가 빛을 발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