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장 성폭력 신고창구 신설, 2차 가해 징계 기준 만든다

입력
2020.11.06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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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부 ‘공공부문 성범죄 근절 대응체계 강화 방안’
선출직 공직자 포함 공공기관장 성범죄 전담 창구
인권위 시정권고 불이행시 여가부가 직접 제재
여성계 "권력형 성범죄라 말못하는 장관, 
그 산하 기구에 누가 신고하겠나" 싸늘

최근 선출직 공공기관장 성폭력 사건이 잇달아 발생하면서 여성가족부가 공공기관장 성폭력에 대한 별도 신고창구를 신설하기로 했다. 관계부처와 협의해 성폭력 2차 가해 공무원에 대한 징계 기준도 연내 마련한다는 방침인데, 구체적인 안이 나오기도 전부터 여성계에서는 냉소적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6일 서울 광화문 정부청사에서 여성폭력방지위원회를 열어 ‘공공부문 성희롱‧성폭력 근절 대응체계 강화 방안’을 심의‧의결했다고 밝혔다.

방안에는 우선 다음달 1일 여가부 산하 ‘공공부문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신고센터’에 지자체장, 교육감 등 선출직을 포함한 기관장 전담 성폭력 신고창구를 개설하는 내용이 담겼다. 전담인력을 배정해 법률상담‧의료비 등을 지원하는 한편 중대사건 발생 기관에 대해서는 현장점검 후 추가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건 대응 컨설팅을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성폭력 발생 기관에 대한 실태 조사는 기존대로 국가인권위원회가 맡되, 해당기관이 인권위 시정 권고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여가부가 직접 제재하는 법 개정도 추진한다. 그동안 공공기관 성폭력 사건이 발생해도 여가부는 조사나 제재에 관한 강제권이 없어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여가부 관계자는 “(가칭) 성차별·성희롱 금지 및 권리구제법을 신설해 인권위 시정 권고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 여가부장관이 직접 시정을 명령하고 불이행 시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인사상 불이익 조치, 따돌림 등 조직 내 2차 가해자에 대한 공공기관 징계양정 기준도 행정안전부, 인사처 등 관계부처와 협의해 마련한다. 황윤정 여가부 권익증진국장은 “(2차 가해에 대한 정의, 사례 등을 정리해) 지자체가 활용 가능한 2차 피해 방지 지침 표준안을 마련 중”이라며 “이달 중 발표될 연구용역 결과를 토대로 표준안이 마련되면 지자체에 시달해 자체 (예방)지침이 수립되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밖에 공공기관에서 성폭력이 신고된 경우 △휴가와 부서 재배치 등 피해자 보호조치를 취할 의무 △피해자와 신고자에 대한 불이익 조치 금지 의무 등을 담은 법 개정도 추진한다. ‘지자체장 성평등 공약’과 같은 성평등 조직문화 관련 지표를 지자체 합동평가 지표로 신설·반영한다.

여가부는 이번 방안을 “강력한 조치”(황윤정 국장)라고 자평했지만, 여성계의 반응은 싸늘하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은 “박원순, 오거돈 시장 사건을 ‘권력형 성범죄’라고 말도 못하는 장관을 보고 그 부처 신고센터에 성폭력을 신고할 피해자가 누가 있겠느냐”며 “성폭력 피해자 구제, 2차 가해 예방은 기존 법률을 적극적으로 해석해도 해결할 수 있었고, 결국 제도의 실효성은 집행하는 사람이 관건”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이정옥 여가부 장관은 위원회 개최 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중 적절하지 못한 발언으로 피해자분들을 비롯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려서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성희롱·성폭력 사건 피해자분들께 당초 저의 의도와 관계없이 결과적으로 상처를 드리게 된 것에 대해 진심으로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전날 이 장관은 더불어민주당 소속 광역단체장들이 성추행 혐의로 퇴진해 치러지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의 선거비용에 대해 “국민 전체가 성인지 감수성을 집단학습 할 기회”라고 말해 논란을 자초했다.

이윤주 기자
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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