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로 치르는 선거가 학습 기회라는 여가부 장관

입력
2020.11.0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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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이 두 광역단체장의 성폭력 사건으로 치러지는 보궐선거를 두고 “성인지 학습 기회”라고 말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 장관은 5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 전체회의에서 “서울ㆍ부산 시장 보선에 드는 세금 838억원이 성인지 관점에서 어떤 의미가 있느냐”는 질의에 “굉장히 큰 예산이 소요되는 사건으로 국민 전체가 성인지성을 집단 학습하는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질문을 한 윤주경 국민의힘 의원이 황당해하며 “학습비라는 것이냐”고 재차 묻자, 그는 한술 더 떠 “어떤 상황에서도 국가를 위해 긍정적인 요소를 찾아내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권력형 성범죄를 바라보는 왜곡된 인식에 참으로 아연하다.

이 장관의 답변대로라면,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 다행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나 다를 바 없다. 피해 여성들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는 ‘2차 가해’다. 심지어 그 같은 발언이 여성의 권익 증진과 성폭력 피해자 보호에 앞장서야 할 주무부처 수장의 입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부끄럽다.

피해자들은 ‘미투’ 이후에도 가해자의 지위와 그를 둘러싼 권력과 인맥, 사회의 무차별적인 ‘N차 가해’와 힘겹게 싸우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무공천 당헌’까지 뒤집고 두 선거에 모두 후보를 내겠다며 무책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장관의 답변이 혹여 그런 여당을 의식한 것이라면 세간의 비웃음처럼 부처 이름을 ‘여당가족부’로 바꾸는 게 낫다.

이 장관이 성평등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자질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쏟아진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성인지 감수성을 학습해야 할 건 누구도 아닌 장관이다. 그보다 먼저 이런 수준의 인식을 가진 이가 여성 인권을 위한 부서를 책임지는 게 맞는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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