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버 기사는 자영업자"… 노동권 후퇴 선택한 실리콘밸리

입력
2020.11.06 01:00
'플랫폼 노동' 탄생지인 미 캘리포니아에서
플랫폼 노동자 근로자성 묻는 주민발의 투표
결과는 "노동자성 반대"…특고 논란 한국에 큰 의미

미국 대통령 선거일인 3일(현지시간), 미 서부 캘리포니아에서는 노동의 미래를 바꿀만한 중요한 투표가 동시에 진행됐습니다. 주민발의안 제22호, ‘플랫폼 종사자는 자율계약자인가’에 대한 찬반 투표입니다. 우버 기사 그리고 미국판 배달의민족인 포스트메이츠의 배달원 등이 근로자인지를 따지는 결정이었는데요. 결과는 찬성 측 승리입니다. 주민들은 플랫폼 종사자는 자영업자, 우리로 치면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라고 본 것이지요.

캘리포니아주가 이번 투표를 진행하게 된 건 플랫폼 노동에 대한 논쟁이 가장 첨예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플랫폼경제 자체가 이곳 실리콘밸리에서 태어났습니다. 2009년 우버의 차량공유가 시작된 이후 비슷한 기업인 리프트, 음식 배달앱 도어대시 등 다양한 플랫폼 서비스가 확산됐습니다. 2014년만 해도 약 16만명에 불과했던 미국 내 우버 기사도 지난해 300만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전체 플랫폼노동 종사자도 2017년 기준 약 5,500만명으로 늘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 됐습니다.

더욱이 플랫폼 노동을 본업으로 삼는 사람도 늘어나면서 이들을 보호할 필요성도 커졌습니다. 기사들은 ‘우리가 성공의 일등 공신’이라며 휴일수당 등을 요구했지만, 우버는 앱을 깔고 단순한 절차만 거쳐 일하는 이들을 고용할 생각이 없었죠. 이에 캘리포니아주 의회는 이들의 근로자성을 판단하는 ‘AB5’법을 만들어 올해 1월부터 시행합니다. △회사의 지휘와 통제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회사의 주요 사업이 아닌 부분에서 일해야 한다 △회사의 업무와 독립적인 직업 또는 사업에 종사해야 한다. 셋 중 하나라도 ‘아니오’ 라면 근로자로 봐야 한다는 내용이죠. 사실상 모든 기사를 직고용하라는 겁니다.

플랫폼 기업들이 이를 무효화하기 위해 내놓은 마지막 수단이 바로 주민발의입니다. 이들은 플랫폼 노동자의 독립성을 훼손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기사의 의료보조금과 최저임금을 지원하겠다는 대책도 내놨고요. 내막에는 캘리포니아의 기사를 모두 고용할 경우 세금은 물론 건강보험료나 퇴직급여 등 비용이 들어 서비스료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있었습니다. 이들 기업이 역대 주민발의 투표 중 가장 큰 금액인 2억 달러(2,258억원) 이상을 홍보와 로비에 쓴 이유입니다.

이번 결과는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그간 AB5법의 영향으로 다른 나라들도 플랫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고려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도 배달플랫폼업계 노사가 자율협약을 맺는 등 진전이 있었죠. 하지만 실리콘밸리에서 이를 스스로 뒤집었으니, 기업들도 이를 따를 가능성이 큽니다.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이번 결정은 고용보험 확대 등 국내 플랫폼노동자 보호입법 과정에서 제동을 거는 근거로 활용될 것”이라 전망합니다.

파장은 알 수 없습니다. 아직 플랫폼종사자는 전 세계 노동자의 5%, 우리나라는 2%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숫자가 점차 늘어날거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미국의 결정에 우리는 질문해야 합니다. 노동자 보호에 드는 비용을 절감해 유지되는 이 산업이 과연 지속가능 할지 말입니다. 산재보험이 없는 택배기사와 고용보험이 없는 대리기사. 이들 '무늬만 사장님'이 코로나19라는 위기에 어떻게 쓰러졌는지, 우리는 올해 똑똑히 봤기 때문입니다.


신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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