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의견수렴 없었다"…간담회 박차고 나온 여성계

입력
2020.11.05 16:40
여성계, 정부와 모자보건법개정안 간담회
"정부, 개정안 조문비교표만 들고 왔을 뿐"
"의견수렴 명분쌓기냐"…항의로 무산돼



보건복지부가 4일 여성계를 초청해 '낙태죄' 관련 비공개 간담회를 열었으나 현장에서 여성계의 항의에 부딪쳐 간담회가 무산된 것으로 드러났다. 여성계는 "여성들의 (낙태죄 관련) 의견을 수렴하지 않는 정부의 형식적인 명분 쌓기용 자리가 반복되고 있다"며 반발했다.

낙태죄 폐지 운동을 위한 여성단체들의 연합체인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모낙폐)은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여성계의 의견을 제대로 모아 낙태죄를 전면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낙폐에 따르면 복지부는 전날 오후 2시 서울에서 인공임신중절(낙태) 관련 모자보건법 개정안에 대한 여성계 의견 수렴을 목적으로 간담회를 개최했다. 복지부에서는 인구아동정책관·출산정책과장·담당자 등이 참석하고 법무부의 형사법제과 담당자도 동석하는 자리였다. 여성계에서는 모낙폐를 비롯 △한국여성단체연합공동대표 △대한간호조무사협회 △여성민우회 △한국여성단체협의회 △YWCA연합회 △한국여성정치연구소 △한국여성유권자연맹 등이 자리를 함께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간담회는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무산됐다. 나영 모낙폐 공동집행위원장은 "현장에서 복지부가 내놓은 안건 내용은 이미 발표된 모자보건법 입법예고안 조문 비교표가 전부였다"며 "복지부에 앞서 제출한 모낙폐와 각계 의견서를 검토하고 여성들의 현실적 요구를 반영하기 위해 논의할 준비가 되어있는지 물었으나, 보건복지부 출산정책과장, 인구아동정책관 등은 어떤 준비도 되어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나영 위원장은 "참석 단체 대다수는 정부가 형식적인 명분용 의견수렴 자리를 만든 것에 항의하고 간담회를 나왔다"고 밝혔다.

여성계는 정부가 제대로 의견도 수렴하지 않은 채 '여성계 의견을 반영했다'는 구색 맞추기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문설희 모낙폐 집행위원장은 "지난해 4월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모낙폐는 복지부에 임신중지 전면 비범죄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서면으로 전달했으나, 올해 6~7월에 걸쳐 간담회를 예정했다가 일방적으로 취소하기를 세 차례나 반복했다"며 "결국 10월 정부는 낙태죄는 존치한 채 여성계가 반대하는 주수(週數) 제한, 의사의 진료거부권 명시, 사회경제적 사유와 숙려기간 도입 등이 담긴 형법ㆍ모자보건법 개정안을 내 놨다"고 말했다.

나영 위원장도 "헌재 결정 이후 복지부는 단 한 차례만 여성계를 만났고, 법무부는 여성계의 의견을 직접 청취한 적이 한 번도 없으며 여성가족부도 책임있는 행보 없이 눈치만 봤다"며 "더 분노스러운 점은 정부가 여성들과 사회적 소수자들의 건강과 권리보장에 대한 일말의 고려도 없이 낙태를 태아살해행위로 규정하고 시간끌기 전략을 짜고 있다는 것"이라고 규탄했다.

4일 간담회에 참석한 김수경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여성국장은 "정부는 여성들의 임신중지가 안전과 생명권의 문제임을 간과하고 있다"면서 "복지부는 여성계의 의견을 들었다는 구실을 통해 또 한 가지의 (보여주기용)보고서를 만드는 용도로 우리를 활용해선 안 된다"라고 밝혔다.




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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