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모르게 초등학생이 1억원이 넘는 돈을 송금한 사건에서 환불을 제대로 하지 않아 빈축을 샀던 온라인 스트리밍 어플리케이션 ‘하쿠나라이브’가 뒤늦게 전액을 되돌려 준 것으로 확인됐다. 전액 환불로 사건은 일단락 됐지만, 이번 사건으로 드러난 제도적 허점을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4일 하쿠나라이브는 김모(11)양의 아버지 김모(46)씨에게 남은 금액 약 4,630만원을 환불했다고 밝혔다. 8월 12일 김씨가 하쿠나 라이브에 환불을 요구한 지 3개월 만이고, 이를 다룬 한국일보 보도(11월 2일 자)가 나간 지 3일 만이다. 하쿠나라이브 관계자는 “이용자들께 염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밝혔다.
그간 하쿠나라이브는 "우리는 플랫폼일 뿐 직접적 환불 책임이 없다"며 책임을 미뤘다. 자신들은 인터넷 방송인(BJ)과 시청자를 연결하기만 할 뿐, 이들 간에 벌어지는 거래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다는 논리였다.
앞서 하쿠나라이브는 김양이 결제한 1억3,000만원을 회사 계좌에 보유하고 있었으면서, BJ가 반대한다는 점을 이유로 들어 환불을 미뤘다. 김양은 이 돈으로 현금화가 가능한 게임 아이템(다이아몬드)을 구매해 BJ 35명에게 보냈는데, 하쿠나라이브는 아버지 김씨의 환불 요청을 듣고 8월 13일 아이템의 현금화를 막았다. BJ에게는 게임 아이템만 분배됐고 실제 현금은 사업자가 쥐고 있었던 것이었다.
김씨에 따르면 현금화가 금지되자 BJ들이 회사 측에 “무슨 권리로 현금화를 막느냐”며 항의했고, 그러자 회사는 김씨에게 “BJ 동의가 없으면 환불을 못 한다”며 말을 바꿨다. 김씨가 “BJ들을 설득하게 연락처라도 알려달라”고 회사에 요청했지만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김씨는 앱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이용해 BJ 35명을 일일이 접촉해야 했고, 나중에서야 사업자가 전체 회의를 열어 BJ 34명으로부터 1억원가량의 환불 약속을 받을 수 있었다.
당시 전체회의 영상을 보면 김씨는 짜증을 내는 BJ들에게 사과를 했고, 눈물을 터트리는 김양을 달래며 회의를 진행했다. 중증 2급 장애(시각·뇌병변) 때문에 휠체어를 탄 김양의 어머니도 뒤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가장 많은 돈을 받은 BJ인 A씨가 환불을 거부해 이날까지 4,600여만원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었다. A씨는 2일 앱에 "하쿠나가 애초에 미성년자 환불 방침을 제대로 정해두지도 않고 BJ들에게 책임을 떠넘겼다"며 BJ들도 앱의 실수로 피해를 본 만큼 앱 차원의 대책이 뒤따라야 한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앞서 A씨는 나머지 34명 BJ들에게 "하쿠나의 부당한 조치에 항의해야 한다"며 환불 거부를 종용하기도 했다.
이날 환불 조치는 하쿠나라이브가 BJ의 동의와 관계 없이 김씨에게 영수증 취소 처리를 하며 일단락됐다. 하쿠나라이브 관계자는 "김씨에게 환불을 먼저 해주고 BJ들과의 대화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사업자가 책임을 회피하고 A씨가 환불을 거부하던 3개월간 김씨는 “지옥같은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8월 13일 첫 환불 요구에 하쿠나라이브는 “정책에 의해 환불은 불가능하다”고만 짧게 통보했다. 21일엔 김씨에게 “다음날까지 (환불을 해야 할) 합법적ㆍ객관적인 설명을 하지 않는 경우 현금화 금지를 풀겠다”고 통보했다. 이후에도 “앱 스토어인 구글플레이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BJ의 동의도 받아야 한다”며 요구사항을 바꿨다. 이 과정은 전화 한 통 없이 메일로만 진행됐다. 김양은 이 사건의 충격으로 학교에서 심리상담을 받고 있다.
김씨는 “BJ 설득은 사업자와 BJ 간의 문제인데도, 사업자는 플랫폼이라는 이유로 뒷짐만 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일단 환불은 받았지만, 이를 계기로 어린 아이들이 다시는 이런 일을 당하지 않으면 좋겠다"며 "애초부터 이런 일 없도록 플랫폼 관련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하쿠나라이브 관계자는 "이 건에 대한 정확한 사실관계 파악 등에 시간이 다소 소요됐다"며 "사업자로서 할 수 있는 한 적극적 조치를 취했다"고 해명했다.
전문가들은 플랫폼 기업에 대한 관리 공백이 드러난 만큼, 사회적 책임을 법제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하쿠나라이브는 이용 가능 연령이 14세 이상임에도, 구체적 연령 인증 절차를 갖추지 않아 11세 김양이 이용하는 데 아무 지장도 받지 않았다.
또 약간의 편법만으로 김양이 1억원이 넘는 금액을 결제할 수 있었는데도, 미성년자의 환불과 관련한 정책이 전혀 마련되지 않았다. 규제 책임을 진 방송통신위원회마저 “어머니가 아이에게 휴대폰을 준 측면이 있어 환불이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앱 과금과 관련한 미성년자 환불 관련 분쟁은 4년 사이 3,600건에 달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BJ와 플랫폼 기업 간의 관계를 정리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정창원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플랫폼 기업은 BJ와 수익을 나눌 뿐 아니라, 콘텐츠를 감독하고, 계정 가입ㆍ탈퇴ㆍ정지를 관리하는 특수한 고용관계에 있다”며 “플랫폼이라는 단어를 구실 삼아 BJ와 이용자 사이의 분쟁에서 자유로운 구조를 재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하쿠나라이브는 BJ 수입의 10%가량을 수수료로 받는데, 모회사인 하이퍼커넥트의 올해 상반기 매출은 1,235억에 달한다. 그러나 하쿠나라이브의 이용 약관엔 BJ의 콘텐츠와 사용 자격(나이 제한 등), 게임 아이템 관련 청구와 관련해 “모든 책임은 이용자가 부담한다”고 여러 차례 명시돼 있다.
앞서 김양은 8월 3일부터 10일간 중증 2급 장애를 가진 어머니의 휴대폰과 연동된 계좌를 통해 하쿠나라이브에 1억3,699만원을 송금했다. 이 돈은 김씨 가족의 전세보증금이었다. 김양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친구들을 제대로 만나지 못한 상황에서 이 앱에 빠져들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환불 사건과 관련해 하쿠나라이브 관계자는 “건강한 커뮤니티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원점부터 돌아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