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8일 개교한 42서울은 정부가 프랑스의 프로그래머 양성 학교 에콜42와 제휴해 만든 ‘한국판 에콜42’다. 국가가 보증하는 프로그래머 양성을 목표로 삼은 42서울은 교재, 교사, 학비가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대신 과제를 주면 학생들이 협업해 해결해야한다. 이 과정에서 학생이 서로에게 교사가 되고 평가자가 되는 독특한 교육 시스템이다.
이노베이션아카데미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예산을 받아 운영하는 만큼 학생들은 따로 학비를 내지 않는다. 학생들은 모두 국비 장학생인 셈이며 거꾸로 매달 100만원의 지원비를 받는다. 학비 벌려고 일하지 말고 공부에 전념하라는 뜻이다. 그래서 경쟁률이 치열하다. 올해 처음 학생을 받았는데 입학 경쟁률이 44 대 1이었다.
선발과정도 혹독했다. 한 달 동안 치른 마지막 선발 과정 ‘라피신’은 하루 12시간 이상 컴퓨터를 붙잡고 씨름하지 않으면 해결하기 힘든 과제들을 쏟아냈다. 이진얼 42서울 매니저는 “수천 명 지원자 중 1차 통과자 600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 라피신에서 탈락했다”고 말했다.
한 달 전부터 오프라인 수업을 병행하고 있는 서울 개포동의 42서울을 4일 방문했다. 예전 학교를 개조해 운동장과 강당, 학교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 매니저는 “2023년까지 강당도 강의실로 바꿔 선발 인원을 더 늘릴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고가의 애플 모니터와 맥킨토시 컴퓨터가 수십 대씩 늘어선 강의실 책상에 투명 아크릴 칸막이가 설치됐다. 그마저도 코로나19 감염을 우려해 한 층에 50명만 들어가도록 조정하면서 학생들이 띄엄띄엄 앉아 한산해 보였다.
고졸 이상이면 나이 불문하고 지원할 수 있어서 학생들 경력이 다양했다. 고교 졸업 후 의류업체를 운영한 김남형(30)씨와 신생기업(스타트업)에서 일한 전환오(27)씨는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어 지원했고, 소설가 최서희(21)씨는 컴퓨터로 하는 일이 좋아 입학했다. 건축 설계사였던 김민창(31)씨는 로봇을 이용한 건축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는 김누리(22)씨는 제대로 전공을 택했는지 의문이 들어 자신을 시험하려고 지원했다.
개강하자마자 닥친 코로나19는 이들에게 새로운 시험대였다. 김민창씨는 “바로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해 몇 달 동안 영상회의 소프트웨어 ‘줌’과 업무용 메신저 ‘슬랙’으로 학습했다”며 “온라인 수업의 한계 때문에 진도가 느려 답답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하지만 코로나19는 한편으로 학생들에게 전화위복이 됐다. 김남형씨는 “많은 기업들이 재택근무를 하며 사용하는 원격회의 솔루션들을 경험하는 기회가 됐다”며 “오히려 원격근무 환경에 강한 학생들이 됐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가장 크게 배운 것은 협업 시스템이다. 최서희씨는 “이 곳의 과제들은 독학으로 풀 수 없다”며 “서로 의논하고 가르쳐주다 보면 실력차를 뼈저리게 느낀다”고 설명했다.
여럿이 과제를 풀면서 일어날 수 있는 베끼기 같은 부정행위는 학생들이 서로 찾아낸다. 전환오씨는 “학생이 정확한 풀이과정을 알고 있는지 토론을 통해 확인하는 ‘디펜스’ 절차가 있다”며 “부정행위를 하면 디펜스에서 바로 들통나 새로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만큼 주입식 교육에 익숙한 사람들은 맞지 않는 곳이다. 김누리씨는 “과제를 해결하려면 반드시 팀을 구성해야 한다”며 “주입식 교육을 좋아하고 협업에 약하다면 지원하지 않는게 좋다”고 전했다.
‘블랙홀’이라는 독특한 제도를 보면 과제 난이도가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남형씨는 “과제마다 해결 기간이 주어지는데 이를 넘겨서도 풀지 못하면 블랙홀 시스템에 빠져 퇴학 처리된다”며 “벌써 여러 명이 블랙홀에 빠져 사라졌다”고 털어놓았다.
지원금을 주는 기간은 2년이지만 전체 학습 기간을 학생들이 각자 정할 수 있다. 인터뷰를 한 학생들은 모두 1년 정도 공부하고 내년에 나가겠다는 생각이다. 김누리, 전환오, 최서희씨는 벌써 CJ올리브네트웍스의 유통 플랫폼 구축 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원래 42서울은 세계 각국에 퍼져있는 에콜42와 연계해 학생들을 해외에도 보낼 계획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 때문에 해외 교류는 중단된 상태다. 이 매니저는 “코로나19가 사라져 해외 교류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며 “그동안 학생들의 의견을 받아 교육 시스템을 계속 개선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