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이 선거 전후 첨예해지는 국가 분열을 넘어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 관계'까지 갈라놓고 있다. 부모자식 간 절연 선언, 형제 간 대화 단절 등이 늘면서 대선 승패 여부를 떠나 씻을 수 없는 상처와 후유증을 남길 것으로 보인다. 직업, 금전 등으로 엮인 2차 집단과 달리 가정은 전인격적인 1차 집단이라는 점에서 감정의 골이 깊을 수밖에 없다.
로이터통신은 2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4년간 정치권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의 관계를 어떻게 갈라놓았는지 트럼프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 지지자를 5명씩 심층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단했다. 가정이 파탄 난 사례가 많았다.
예컨대 미국 위스콘신주(州) 밀워키에 사는 마이라 고메스(41)씨는 약 5개월 전 아들(21)에게 "당신은 이제 더 이상 제 엄마가 아니다"라는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그는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투표할 것이라고 하자 아들이 그리 말했다"라며 "대선이 끝나더라도 아들과 화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로사나 과다그노(49)씨는 4년 전부터 오빠와의 관계가 끊어졌다. 당시 트럼프를 지지하길 거부하자 오빠가 절연 선언을 한 것이다. 이후 오빠는 어머니의 부고마저 즉시 알리지 않았다. 바텐더 재클린 해먼드(47)씨는 어머니가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라는 사실을 안 뒤 대화를 중단했다. 그는 "혹시라도 어머니가 정치적인 영향을 미칠까 봐 내 아들에게도 할머니와 정치 얘기를 하지 말라고 했다"고 로이터에 말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든든한 지원군이자 조력자가 되어야 할 가족이 서로 갈라진 건 그만큼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와 반대자의 시각 차가 팽팽하다는 증거라고 통신은 풀이했다.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는 그의 잇단 보수 정책과 거친 언행을 '직설어법'이라며 동경하는 반면, 민주당 지지자는 트럼프 대통령을 인종차별주의자, 민주주의 파괴자, 혐오스러운 거짓말쟁이로 본다는 것이다. 실제 올해 1월 갤럽 조사에 따르면 트럼프 정부의 지난해 활동에 대한 긍정 평가는 공화당원 89%인 반면, 민주당원은 7%에 그쳤다.
문제는 누가 당선되든 양측의 갈등이 쉽사리 치유되지 않으리라는 점이다. 제이 반 바벨 뉴욕대 심리학과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만큼 국민들을 분열시킨 인물은 미국 역사상 없었다"라며 "(상대와) 타협하지 않으려는 분위기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