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용 "해외파 은퇴 전 K리그 복귀, 연봉 이상의 가치가 있다”

입력
2020.11.0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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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초 프로축구 K리그가 개막 전부터 들썩였다. ‘블루드래곤’ 이청용(32)의 울산 입단 발표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FC서울에서 뛰다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 무대로 진출한 지 11년 만에 국내 무대로 돌아오는 그를 울산 팬뿐 아니라 다른 팀 팬들도 반겼다. 비록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개막이 미뤄지고, 개막 후에도 한동안 무관중 경기가 치러졌지만 이청용의 녹슬지 않은 기량에 축구 팬들은 열광했다.

이청용은 1일 막을 내린 K리그1(1부 리그)에서 목표로 했던 우승 트로피를 들진 못했지만, 국내 복귀 첫 시즌 팬들의 성원에 진한 감격을 느낀 모습이었다. 그는 최근 본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해외파 선수들을 향해 “은퇴 전 K리그에 복귀해 뛰어보니 연봉 이상의 가치가 충분히 있다”며 “많은 선수들이 K리그에 돌아오는 걸 너무 꺼려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힘 줘 말했다.


코로나19 여파로 27경기로 축소 운영된 이번 시즌 K리그1에서 이청용은 20경기에 출전, 4골 1도움을 기록했다. 중원과 측면을 부지런히 오가며 한 차원 높은 수준의 경기력을 보이며 울산의 공격을 지휘했다. 적극적인 수비 가담도 서슴지 않는 모습에 후배들도 덩달아 힘을 냈다. 이청용은 “한 시즌을 치러보니 어느 하나 쉬운 팀이 없었다”며 “2009년과 지금을 비교하면 K리그 전체적인 수준이 상당히 높아졌고 팀마다 색깔도 뚜렷해진 것 같다”고 돌아봤다.

30대 초반이란 다소 이른 나이에 국내 복귀를 선택한 건 오롯이 그의 선택이었다. 한 번쯤은 유럽 내 다른 팀에서 더 뛸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청용 마음은 K리그로 향해 있었다. 그는 “언젠간 한국 팬들 앞에서 뛰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며 “유럽에서 한 번 더 이적했다면 2~3년 뒤에나 돌아올 수 있는데, 그 때는 너무 늦을 거라는 판단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금이라도 더 좋은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을 때 한국 팬들과 만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가족들은 되레 이청용의 경기력이 떨어져 비판을 받을까 봐 국내 복귀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고 한다. 그는 “전성기가 지났기에 걱정을 많이 한 건 사실”이라면서도 “막상 국내에 오니 팬들이 내가 뛰는 것 자체를 좋아해주시는 것 같았다”며 팬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그는 “내가 엄청난 톱 스타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런 팬들의 모습을 보니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국내 복귀를 염두에 두고 있는 해외파들에게도 이런 분위기가 잘 전달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청용에 이어 7월엔 FC서울 시절 그와 단짝이던 기성용(31)도 친정으로 복귀했다. 곡절은 많았지만, 기성용이 K리그로 돌아온다는 소식에 그는 울산 구단을 통해 환영 메시지를 담은 영상을 소개하기도 했다. K리그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었지만, 이 자체도 하나의 이야깃거리였다. 8월 30일 경기가 끝난 뒤 서울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이청용과 기성용, 그리고 박주영(32ㆍ서울) 고요한(32ㆍ서울) 고명진(32ㆍ울산)이 한 데 모여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도 화제였다. 이청용은 이 때를 떠올리며 “성용이가 상대팀이었지만, 상대팀 같지 않은 느낌이었다”며 “한국에선 처음 다른 옷을 입고 뛰다 보니 느낌이 묘했다”며 웃었다.


울산에서는 올해 처음 생활해본 이청용은 연고지에 대한 만족감과 애정을 전했다. 그는 “코로나19로 많이 움직이진 못했지만, 산과 바다가 모두 가까워 가족들과 한적한 곳에 가서 시간 보내기에 좋았다”고 했다. 맛집도 발굴해가며 울산의 매력을 한껏 느끼고 있단다. 그는 “팬들과 만날 기회가 많았다면 좋겠지만, 한편으론 이런 상황에서도 시즌을 모두 치러냈다는 게 놀랍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건 한 두 사람의 노력이 아닌, 축구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며 자부심을 전하기도 했다.

끝으로 그는 해외 진출에 도전하는 K리거들에게도 응원을 전했다. 그는 “가끔 동료들이 내게 TV에 나오는 선수들에 대해 물었을 때 그 선수에 대해 얘기해주곤 한다”며 “울산은 물론 K리그 무대에 재능 있는 선수들이 많은데, 어딜 가든 실력과 함께 현지 선수들과의 관계 구축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다른 선수들과 운동장 밖에서의 관계를 조금 더 적극적으로 쌓는다면, 어딜 가도 쉽게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며 “영어는 어느 나라에서든 쓸 수 있으니 미리 준비해두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울산= 김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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