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층엔 시아버지, 위층엔 시누이… '시월드' 편견을 깬 집

입력
2020.11.04 04:30
18면

편집자주

집은 ‘사고 파는 것’이기 전에 ‘삶을 사는 곳’입니다. 집에 맞춘 삶을 살고 있지는 않나요? 삶에, 또한 사람에 맞춰 지은 전국의 집을 찾아 소개하는 기획을 수요일 격주로 <한국일보>에 연재합니다.



한국 여성에게 ‘시댁’은 쉽게 좁혀지지 않는 간극이다. 가족이라는 한 울타리에 있지만 보이지 않는 위계와 형식이 서로를 밀어낸다. 지난해 12월 경기 시흥에 완공된 박상택(49)ㆍ최영옥(45) 부부의 집(대지 면적 329㎡ㆍ100평)은 ‘시’ 자만 들어가도 질색하는 우리 사회의 편견을 깬다.

3층으로 지은 집(건축 면적 196.56㎡ㆍ60평) 1층에는 홀로 된 시아버지가, 3층에는 시누이 부부와 조카가 사는 보기 드문 현대판 ‘시월드’다. 며느리인 최씨가 ‘부담 주는 건 딱 싫다’는 시아버지를 설득하고, ‘불편하고 힘들다’며 고민하던 시누이의 손을 잡았다. 그는 “책임감이나 부담감에 같이 살자고 했다면 하루도 못 살았겠지만 가족들이 모여 복작복작한 삶을 원해서 함께 모여 산다”고 했다.




두 개의 현관, 세 개의 마당

세 가구가 한집에서 살기로 한 건 시아버지 집이 있던 땅이 개발돼 이사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인근 아파트에 살던 며느리 최씨도 적잖은 고민에 빠졌다. “가까이 살면서 홀로 된 아버님께 ‘한번 가봐야지’하고 자주 못 찾아 뵀던 게 마음에 걸렸죠. 그리고 아이도 하나여서 가족들이 서로 모여 살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평소 왕래가 잦았던 시누이 가족도 합류했다.

최씨가 중심이 돼 세 가구가 살 집을 그렸다. 조한준 건축가(조한준건축사사무소소장)에게 설계를 의뢰하면서도 구체적인 집의 형태보다는 꿈꾸는 삶의 풍경을 빼곡하게 적어 냈다. ‘이웃에 위세 부리지 않고 주변을 비웃지 않는 집’, ‘아이가 햇빛에 달궈진 마당의 돌을 맨발로 밟으면서 뛰노는 집’, ‘아버님이 일군 텃밭에서 딴 오이와 고추를 다듬을 작은 수돗가’, ‘동네 아이들이 놀다 가는 집’, ‘가족만 사는 게 아니라 명절, 모임 등을 위한 주방’, ‘아버님과 앉아 멸치를 다듬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툇마루’ 등이었다. 조 건축가는 “마치 한 편의 에세이를 읽은 것처럼 가족들이 사는 삶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고 말했다.



고도 제한에 3층으로 올린 집은 도로를 따라 줄지은 다가구주택 사이에 있다. 보통 다가구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여 지어 가구 수를 최대로 늘리는 것과 달리, 건축가는 최대한 공간을 비웠다. 다가구주택이지만 단독주택처럼 지었다. 건축가는 “주변에 집들이 채워지더라도 채광에 방해되지 않게 배치하고, 세 가구가 각자의 집에서 단독주택의 정취를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해 층마다 마당을 두었다”고 말했다. 네모 반듯한 주변의 집과 달리 이 집은 주택가에 숨통을 틔우듯 군데군데 비운 비정형 집이다.

집은 하난데 출입구는 두 개다. 팔순의 시아버지가 머무는 1층과 자녀들이 수시로 오가는 2, 3층의 동선을 분리하기 위해서다. 최씨 부부와 아들(11)이 사는 2층과 시누이 부부와 조카(20)가 사는 3층도 마당을 가로지르지 않는 외부계단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서로의 출입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건축가는 “하나의 출입구에서 하나의 계단을 따라 각자 현관으로 연결되는 다가구주택은 사생활을 보호받기 어렵다”며 “아예 출입구를 달리해서 외부 계단을 통해 집으로 들어가게 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층마다 각각 세 개의 마당이 생겨났다. 1층 담장 역할을 하는 긴 슬라이딩 목재문을 열면 주차장 겸 마당이 나온다. 시아버지의 집 거실 앞에 툇마루를 내 마당과 연결했다. 활동적인 가족들이 사는 2층 마당엔 잔디를 깔았다. 아이는 마당에 텐트 치고 공놀이를 한다. 최씨는 마당에서 김장도 하고 빨래도 널어놓는다.

비교적 내향적인 성인 3명이 사는 3층은 집 내부를 통해 나가는 사적인 베란다를 뒀다. 건축가는 “10대부터 80대까지 가족 구성원들이 공통적으로 원했던 것이 마당이었다”며 “하나의 마당을 공유하기보다 각자의 생활 방식에 맞춘 세 개의 마당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달라진 공간, 풍성해진 삶

층마다 내부 구조와 규모도 각 구성원의 생활 방식과 채광, 환기 등에 따라 달리했다. 팔순인 시아버지가 홀로 지내는 1층은 작지만 알차다. 거실과 주방, 방을 일렬로 배치해 동선은 단순하게 만들었다. 집의 중심 공간은 최씨 가구가 생활하는 2층이다. 세 가구가 한데 모일 수 있게 주방을 크게 펼쳤다. 거실보다 더 넓다.

집을 지으면서 최씨가 가장 신경 쓴 공간이다. “한집에 산다는 거는 자주 모여서 함께 밥 먹고 시간을 보내는 일이잖아요. 사소한 일에도 자주 모여서 파티를 열어요. 최근에는 아이가 학급 임원을 맡아 다 함께 모여 고기를 구워 먹었어요. 2층 주방이 온 가족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하는 집의 중심이죠.”

거실 한편의 평상 같은 공간, 외부 시선을 가리면서 햇빛이 온종일 은은하게 들어오도록 하는 두 개의 창, 잔디마당 등은 2층만이 누릴 수 있는 요소다. 아이는 평상에서 거실을 지나 마당으로 내달린다. “아파트에는 없는 공간들이잖아요. 층간 소음 때문에 친구들 데려오기를 꺼렸던 아이가 이젠 마음껏 친구들과 뛰놀 수 있게 됐어요. 마당이 있으니 저도 김장을 할 수 있게 됐고, 텃밭에서 가꾼 농작물을 말리기도 하고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게 됐죠.”



2, 3층의 가장 큰 차이는 방향이다. 서남향인 집에서 2층은 좀 더 동쪽으로, 3층은 좀 더 서쪽으로 배치됐다. 살짝 틀어진 덕에 집에서 밖을 보는 풍경도 완전히 다르다. 같은 구조로 층층이 쌓아 올려 층마다 앞뒤로 비슷한 풍경을 보여주는 아파트와의 차이다. 방이 2개인 3층에는 박공 모양의 다락을 두고, 천창을 냈다. 3층 주인 시누이 부부는 파란색 싱크대와 보랏빛 벽지 등 아파트에 살 때는 하기 힘들었던 과감한 색상을 써 개성을 드러냈다.




공간이 달라지면서 삶도 바뀌었다. “명절이나 생신 등 특별한 날 만나 식사하고 헤어지곤 했는데 한집에 살면서 함께하는 시간이 많이 늘어났어요. 치킨 하나를 배달시켜도 옹기종기 모여 먹으니 훨씬 맛있고, 서로 ‘고맙다’는 따뜻한 말도 더 많이 주고 받아요. 사람들이 모이는 게 불편했다면 모여 사는 게 싫겠지만 저는 사람들이 복작거리면서 사는 게 좋아요. 제가 꿈꿨던 집이에요.”

집의 이름은 ‘비나채’다. ‘비우고 나누고 채운다’는 의미로 최씨가 직접 지었다. “집을 지으면서 욕심이 많았지만 가족을 위해 비웠고, 집을 통해 주변과 나누고 싶었고, 비우고 나눔으로써 얻어지는 행복에 감사함으로 집을 채운다는 의미를 담았어요.”



강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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