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 전국이 단풍이다. 늦가을 남부 지역의 단풍 명소를 꼽자면 단연 내장산이다. 내장산은 1971년 국내에서 8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일등 공신은 아기 손처럼 앙증맞고 고운 애기단풍이다. 산 아래에 단풍나무가 밀집해 있기 때문에 등산할 필요가 없다는 건 최대 장점이다. 내장산 단풍은 이번 주 절정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달 29일 내장산 단풍 상황을 전한다.
내장사 매표소(문화재관람료 3,000원)를 통과해 다리 하나를 건너면 사찰에서 운영하는 셔틀버스(편도 1,000원)가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제대로 단풍놀이를 즐기려면 걷는 게 제격이다. 매표소에서 사찰까지는 약 2.3km,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탐방로는 오르막이 없이 거의 평탄하다. 내장산은 아름다운 보물을 잔뜩 숨기고 있는 산이라는 의미다. 그만큼 골짜기가 넓고 아늑하다. 매표소 부근에서 잠시 정체되지만 탐방로로 접어들면 충분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다.
본격적인 ‘단풍길’도 계곡 따라 이어진다. 애기단풍이 주를 이루지만 복자기나무, 신나무, 산겨릅나무 등 11종의 단풍과 나무들이 어우러져 화려한 가을 잔치를 벌인다. 다섯 손가락 애기단풍이 햇살에 나부끼면, 발갛게 물든 잎새가 별빛보다 영롱하게 반짝거린다. 어둑어둑한 계곡물에 떨어진 단풍잎은 그대로 밤하늘 별이다. 내장산 단풍이 왜 으뜸인지 스스로 증명한다. 이렇게 찬란한 가을은 사찰 부근 우화정에 이르러 정점을 찍는다. 아담한 정자 주변 풍광이 고스란히 맑은 호수에 비쳐 위아래가 온통 가을색이다.
우화정 뒤에 케이블카(편도 5,500원, 왕복 8,000원) 탑승장이 있다. 탈까 말까 망설인다. 줄이 길면 미련 없이 포기하는 편이 낫다. 케이블카를 타는 이유는 단 한가지, 상부에서 단풍 세상으로 변한 계곡을 내려다보기 위해서다. 편도로 이용하면 전망대를 거쳐 내장사 뒤편으로 내려온다. 약 800m에 불과하지만 경사가 아주 가파르다. 극기훈련을 할 목적이 아니면 거꾸로 걸어 오르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내장산 단풍의 하이라이트는 일주문에서 사찰까지 이르는 단풍터널이다. 108그루 애기단풍이 속세를 벗어나 산사로 안내하는 길이다. 이곳 단풍은 유난히 늦어 11월 중순은 돼야 절정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남부지역이지만 눈이 많이 내리는 편이라, 운이 좋으면 빨간 단풍잎에 새하얀 눈송이가 덮이는 광경도 볼 수 있다.
내장사 경내로 접어들면 돌다리 옆 단 한 그루의 단풍이 주변 풍광을 압도한다. 다리를 지나면 정원처럼 꾸민 연못이 호젓하다. 대웅전 동쪽 처마 위로는 서래봉(624m) 바위봉우리가 웅장하면서도 기품 있게 솟아 있다. 내장사는 백제 무왕37년(636) 영은사라는 사찰로 창건했지만, 조선 중종 때 ‘도둑의 소굴’로 지목돼 전부 소각됐다. 명종12년(1557) 내장사로 이름을 고쳐 다시 세웠지만, 정유재란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또 전소되는 비운을 겪는다. 현재 전각은 모두 한국전쟁 이후의 건물이다.
이만하면 내장산 단풍은 웬만큼 본 셈이다. 시간을 여유롭게 잡으면 부속 암자인 원적암과 벽련암을 잇는 산책로를 걸어도 좋다. 국내 최초로 개설된 생태탐방로다. 내장사에서 계곡 뒤편 용굴까지(1.2km)까지는 ‘왕조실록길’이 이어진다. 용굴은 임진왜란 때 조선왕조실록 전주사고본과 태조의 어진을 380일가량 보관했던 곳이다.
내장산국립공원은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올해는 주차장(5,000원)에서 내장사 매표소까지 오가는 셔틀버스를 운행하지 않는다. 가장 먼 제5주차장에 차를 대면 매표소까지만 3.5km가량 걸을 각오를 해야 한다. 매표소 가까운 곳에 사설 주차장이 있지만, 자리가 많지 않고 성수기엔 1만원의 주차료를 내야 한다. 매표소 부근은 항상 탐방객으로 붐빈다. 국립공원 측에서 체온을 측정하고 연락처를 확인한다. 마스크 착용은 의무, 거리두기에도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