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매나 얼굴보다 손이 예쁜 여자가 좋다.”
2일 오후 수원지법 형사 11부(박정제 부장판사) 심리로 이춘재 연쇄살인사건 8차 재심 재판이 열린 법정. 이날 첫 사건 발생 34년 만에 일반에 모습을 드러낸 이춘재(57)는 재심을 청구한 피고인 측 변호인이 “왜 당시 프로파일러에게 손을 만지고 싶다고 했느냐”고 묻자, “손이 예뻐서 그랬다”며 이런 답을 덧붙였다.
증인으로 법정에 선 이춘재는 재심 청구 피고인 측 박준영 변호인이 “그럼 당시 피해자들도 손이 예뻐서 그랬느냐”고 묻자 “그 상황에서는 그런 거 안 봤다”며 “그냥 아무런 생각 없이 나갔다가 여성을 마주치거나 앞에 가면 무작정 달려가 제압했다”고 했다.
이춘재는 흥분하거나 흐트러짐 없는 목소리, 감정 없는 톤으로 당시 상황을 차분하게 대답했다.
이춘재는 이날 수의를 입고 흰머리가 많은 짧은 스포츠머리를 하고 법정에 들어섰다. 마스크를 착용해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마스크 사이로 비친 그의 이마와 볼, 목 주변엔 주름이 가득했다.
박 변호인이 이번 8차 재심은 물론 8차와 9차 사이 벌어진 화성 초등생 실종사건과 이춘재가 경찰 조사에서 밝혔던 ‘12+2’건의 살인사건과 ‘19+15’의 강간 및 강간미수 사건까지 모두 들춰내며 “본인이 직접 적으면서 자백했는데 맞느냐”고 다그치자 “맞다. 모두 내가했다”며 자백했다.
범행 동기에 대한 질문에도 그는 시종일관 ‘즉흥적 살인’을 강조했다. 또 시신을 옮기거나 훼손한 것도 당시 상황에 따라 바로 들키지 않기 위함이지, 시신을 은닉하기 위함은 아니라고 했다.
그는 “저는 계획적으로 누군가를 강간하고 살해할 목적으로 범행하지 않았다”며 “그냥 길을 가다 여성이 보이면 쫓아갔고, 목을 조르고 속옷으로 얼굴을 가린 것은 여성을 제압하기 위한 것이지 범행을 숨기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화성 초등생 실종 사건 관련해서도 “앞선 범행에 대한 후회감이 들어 자살하러 갔다가 실패 후 되돌아오는 산길에서 초등생을 만났는데 나를 보더니 도망갔다”며 “나도 모르게 아이를 따라가 목을 졸랐다”고 했다. 그러면서 “피해자를 제압하기 위해 가방에 있던 줄넘기로 목을 감았던 것 일뿐”이라고 했다.
이번 재심 8차 사건의 경우도 “학창시절 이웃 선배가 살던 곳이어서 자주 놀러갔는데 범행 당시에는 없던 방이 생겨 들여다보니 체구가 작은 긴머리의 여성이 자고 있어 무작정 들어가 목을 졸랐다”며 “새로운 속옷을 입힌 뒤 이불로 덮었고, 입고 있었던 속옷은 가지고 나와 집 근처에 그냥 버렸다”고 했다. 증거물을 없애려는 게 아니라 단순히 집에서 가지고 나와 버리면 모를 거라 생각했을 뿐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영화 ‘살인의 추억’을 개봉된 지 2년 후 교도소에서 관람했다고 했다. 박 변호인이 “영화를 보고 느낀 것이 있느냐”는 물음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범행을 저지른 후 관련 보도 등도 보지 않았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피해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박 변호인의 말에 그는 “제가 저지른 살인사건에 억울한 누명을 쓴 분들, 유가족 분들에게 모두 사죄드린다”며 “피해자들의 명목을 빌며 제가 증언하고 시인함으로서 작은 위로를 받고 마음의 작은 평안이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