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선 여부를 놓고 대만과 중국이 상반된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대만은 중국에 맞선 ‘방패막이’가 사라질까 전전긍긍하는 반면, 중국은 부쩍 ‘홀로서기’를 강조하며 대선 이후 트럼프 변수를 희석시키려 애쓰는 모습이다. 이런 가운데 중국은 지난달 대만해협에 역대 최대수준의 군용기를 투입해 압박수위를 높였다.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은 지난달 31일 국가안전회의(NSC) 고위각료회의를 소집해 “이번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든 대만을 향한 미국의 초당파적 지지를 이끌어내는 것이 최우선 목표”라고 밝혔다. 특정 후보 편에 서지 않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만의 친(親)트럼프 성향은 중국을 공격하는 미국 매체들마저 문제 삼을 정도다.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올해 초 차이 총통 취임식 때 민주당보다 공화당에서 보내온 축하 동영상을 훨씬 길게 내보냈다”고 꼬집기도 했다. 영국 BBC방송은 “트럼프는 대만이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빅 브라더”라고 평가했다.
미국 주재 타이베이 대표부는 최근 공식 트위터에 트럼프를 지지하는 미 우익단체의 글을 공유했다. 또 대통령 부인 멜라니아의 선거 지원 유세를 리트윗했다. 그러다 논란이 일자 나흘 만에 삭제했다. 트럼프와 선을 그어야 하는 대만의 당혹감을 보여주는 사례다.
대만은 과거 미 대선 정국에 끼어들었다가 곤욕을 치른 뼈아픈 경험이 있다. 장제스(蔣介石)는 1948년 선거에서 공화당 토머스 듀이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했지만 해리 트루먼 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궁지에 몰렸다. 급기야 트루먼은 “7억5,000만달러(약 8,511억원)의 원조를 훔친 도둑”이라며 장제스를 비판했고 이듬해 미중 관계 백서를 통해 장제스 정부의 부패와 무능을 질타했다. 이후 사기가 꺾인 장제스는 국공 내전에서 패해 대만으로 퇴각했다. 중국 신랑망은 2일 “대만이 트럼프를 편드는 상황에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당선될 경우 트루먼이 장제스를 비난한 전례가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네티즌은 지난 수년 간 미국과 격돌하는 과정에서 트럼프를 ‘촨젠궈(川建國ㆍ트럼프가 중국을 건설한다)’라 불러왔다. 트럼프가 미국을 망치고 중국을 압박하면서 오히려 중국은 뭉쳤고, 그 결과 중국의 경쟁력을 높여왔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트럼프라는 외부의 자극에 반응해 발전할 수밖에 없던 중국인들의 무력감이 담겨있다. 트럼프를 향한 조롱과 중국을 향한 자조의 의미가 섞인 표현이다.
이에 중국은 미 대선을 계기로 “촨젠궈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독려하고 있다. 환구시보는 “누가 당선되느냐가 미중 관계의 키 포인트가 될 것이라는 생각은 순진하다”면서 “결과에 상관없이 중국은 자신의 길을 개척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일환으로 인민해방군 창설 100년을 맞는 2027년까지 경제력 향상에 걸맞은 군의 완전한 현대화를 달성해야 한다고 목표로 제시했다.
중국은 이를 과시하기라도 하듯 연일 대만을 겨냥한 무력시위를 벌였다. 대만 자유시보는 “10월 한 달간 정찰기, 전자전기, 대잠기 등 중국 군용기가 대만 방공식별구역에 최소 25일 이상 진입했다”며 “이처럼 잦은 도발은 전례가 없다”고 전했다. 중국 군사전문가 웨이둥쉬(魏東旭)는 글로벌타임스에 “인민해방군이 미국이나 대만의 군사행동에 맞서 대만해협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