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성분을 임신한 동물이 들이마시면 뱃속에 있는 새끼(태자)에게까지 악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밝혀졌다. 가습기살균제 성분의 간접 영향이 실험을 통해 입증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안전성평가연구소는 생식독성연구그룹 연구진이 가습기살균제의 성분 중 하나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PHMG-P)를 임신한 실험용 쥐에 흡입시킨 결과 폐 섬유화와 체중 감소 등 전신에 영향이 나타났음을 확인했다고 2일 밝혔다. 고농도로 흡입했을 땐 태자 역시 몸무게가 크게 줄었다. 이번 실험 결과는 환경과학 분야 국제학술지 ‘유해물질저널’ 최신호에 소개됐다.
연구진은 실험용 흰쥐에게 수정란을 착상시킨 다음 임신이 이뤄진 지 6일째부터 20일째까지 흰쥐가 생활하는 공간에 PHMG-P를 저용량과 중용량, 고용량의 세 가지 농도로 하루 6시간씩 가했다. 에어로졸 상태로 뿌려진 PHMG-P는 쥐가 숨을 쉴 때마다 호흡기를 통해 체내로 들어갔다. 연구진은 임신 21일째에 모체의 몸무게와 폐 상태를 확인하고 제왕절개를 통해 태자를 꺼내 역시 몸무게를 측정해봤다.
그 결과 고용량의 PHMG-P에 노출된 어미 쥐는 흡입 기간 동안의 몸무게가 유해물질을 흡입하지 않은 대조군과 비교해 평균 20% 줄었다. 폐가 단단해지는 섬유화가 생기며 호흡이 곤란해지고, 사료를 잘 먹지 못한 게 전신 건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연구진은 분석했다. 모체의 건강이 악화함에 따라 태자 역시 영향을 받았다. 고용량의 PHMG-P를 흡입한 어미에게서 태어난 태자는 몸무게가 약 24% 감소했다.
연구진은 “임신한 어미의 전신에서 나타난 독성학적 영향이 태아에게까지 미친 것”이라며 “PHMG-P 독성의 간접 영향이 나타났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실험에 사용한 고용량은 과거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역학조사에서 사망이나 중증 질환에 이르렀던 사람들이 노출됐던 농도와 같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중용량에 노출된 어미 쥐는 몸무게가 약 3.8% 줄었고, 태자는 유의미한 변화가 확인되지 않았다. 저용량에선 어미와 태자 모두 변화가 없었다.
가습기살균제 속 유해 성분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소비자들이 폐질환을 비롯한 많은 피해를 입은 지 한참 지나서야 피해를 입증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객관적인 연구 결과가 나온 셈이다. 이에 대해 연구소 측은 “단기간 연구로는 결과를 신뢰할 수 없어 반복적인 실험으로 확인해야 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