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 감염병으로 미국인 수십만 명이 숨진 후 실시되는 대통령 선거다. 현직 대통령마저 병에 걸린 상태다. 주요 도시에서는 인종차별 문제로 촉발된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당선이 유력한 대권 후보는 외부 유세 대신 ‘정상으로의 복귀’ 슬로건을 내걸고 자택에 칩거하고 있다.”
딱 100년 전 대선을 앞둔 미국의 상황이다. 2020년 대선과 놀라우리만치 닮았다. 캐나다 시사주간 매클린스는 “올해 대선은 1920년 선거의 판박이"라고 했다.
1920년 대선을 2년 남겨둔 1918년, 미국에서는 스페인 독감이 대유행했다. 당시 약 67만5,000명이 독감으로 숨졌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한 미군의 약 10배에 달하는 수치였다.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이번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미 전역을 집어삼켰다. 국제통계사이트 월드오미터 집계에 따르면 대선을 이틀 남긴 1일(현지시간) 현재 미국의 코로나19 누적 환자 수는 940만명을 넘어 섰고, 숨진 이도 23만6,098명이나 된다. 100년 전에 비하면 덜 사망했지만, 그간 의학기술의 비약적 발전을 감안하면 대참사나 다름 없다.
1920년 대선에서 야당인 공화당 후보로 선출된 워런 하딩 상원의원은 사실 당원들 사이에서 별로 인기가 없었다. 1차 당원 투표에서는 6.67% 지지를 얻어 경선 후보 6인 중 5위에 그쳤다. 하지만 9차까지 이어진 투표에서 과반 후보가 나타나지 않자 공화당 각 계파 대표들은 상대적으로 ‘만만한’ 하딩을 후보로 결정하자는 야합을 했고, 하딩은 그렇게 대선에 나가게 됐다.
올해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도 경선 초기에는 상위권을 차지하지 못했다. 피트 부티지지 전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 시장이 초반 돌풍을 일으켰고 진보 이미지가 선명한 버니 샌더스·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등에 비해 눈에 띄는 공약이나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많았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독선에 대항할 수 있으며 온건 공화당원까지 끌어들일 수 있는 바이든의 ‘무난함’이 결국 그가 후보 자리를 꿰찰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직 대통령이 병마와 싸우고 있다는 점도 그 때와 같다. 1920년 대선 당시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선거를 1년 앞두고 심각한 뇌졸중에 걸렸다. 다만 이미 4년 전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한 터라 3선 도전은 하지 않았다. 비록 완치됐다고는 하나 트럼프 대통령도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코로나19에 감염됐다.
1920년 대선에서 당선된 하딩 대통령은 55세 나이로 취임했다. 그 때만 해도 미국 남성의 평균 수명은 56세에 불과했다. ‘고령’으로 취급되기 충분한 나이었다. 이번 대선에 출마한 트럼프 대통령은 1946년생으로 내년이면 75세가 된다. 바이든 후보는 더 많다. 1942년생으로 만약 대통령직에 오르게 된다면 팔순이 눈 앞이다. 누가 당선되든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취임하면서 기록한 최고령 대통령 기록을 갈아치우게 된다.
고령 대통령 취임에는 위험이 따르는 게 사실이다. 매클린스는 “하딩은 선거 유세 기간 건강에 문제가 없었지만, 취임 2년 만인 1923년 심장마비로 재임 중 사망했고 캘빈 쿨리지 부통령이 임기를 승계했다”고 전했다.